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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한명 시인의 제2시집 '그 집 앞' 발간

등록날짜 [ 2024년01월09일 09시58분 ]



 

∥ 서평 ∥

 

문학박사/ 김옥자 시인

 

이한명시인 제 2시집 그 집 앞서평

 

시를 쓴다는 것은 삶의 본질을 넘어, 영적 무한한 교신을 통과하는 철학적 양식이 담긴, 생명선과의 교착점이라고 볼 때, 이한명시인의 시는 삶 안에서 펼쳐지는 형상들을 내포하며,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동력으로서 그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사물의 내면으로 가는 벽을 허물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계절 따라 자라는 과실과 채소는 농부의 발자국소리만 듣고도 그 사랑과 정성을 감지하듯, 자연이 안겨주는, 봄날의 풋풋한 산야와, 어느 가을날 바람에 날리는 시인의 옷자락에서, 빈터만 남아있는 고향집의 어머니가 보이고, 아버지가 보이고, 미래를 꿈꾸는 희망, 회한과 그리움이 묻어있는 인생철학이 담겨, 시골길을 걷고 있는 고향이 보인다.

 

이한명시인은 첫 시집 「카멜레온의 詩」를 2021년 봄에 출간하면서, 이한명시인의 시향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강원일보 DMZ문학상 수상과 강원경제신문 코벤트문학상 대상, 인하대 국어문화원 한글날 공모전 수상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제2 시집 「그 집 앞」을 출간하는 이한명시인의 시세계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삶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날개를 단듯, 섬세한 언어와 언어 사이의 공간을 유영하는 여백의 은유, 시의 미학적 열정을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

 

​삶을 옮기는 일

 

​어쩌면 한 생을 통째로 들어내는 일 일지도 모르겠다

 

​이사 횟수가 늘어갈수록

고층으로 사다리를 높여가는 짐만 늘어

두 어깨로 지탱하기엔 버거울 때도 있지만

 

​살아온 세월 동안 씻어내지 못한 묵은 감정들이랑

냉장고 속 얼려버린 차가웠던 시간들은

해동하듯 쏟아내어 탈탈 털어버린다

 

​끝내 생채기처럼 붙어있던 누른 벽지 위

먼지 낀 가족사진을 떼어내니

 

​찾지 못했던

토끼 인형 하나가 바닥에 하얀

발자국을 콕콕 찍으며 문밖으로 걸어 나간다

 

​모두 다 떠나고 난 빈 창문틀엔

통증 앓던 사랑니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어떤 배웅」전문

 

삶 안에는 데칼코마니의 흔적을 오려붙이듯 생각의 형상들을 현실 세계에 남기는 것이리라. 무색과 무형의 생각과 행동의 양식을 순간들 속에 오려붙인 흔적들.

 

생활의 터전에 인쇄되듯 남아있는 흔적들 속에서, 살아온 세월이 덕지덕지 묻어 먼지 낀 울타리를 옮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삶의 이동과 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복잡성을 서정적으로 포착 시키고 있는 「어떤 배웅」은, 이사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삶의 한 단계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고 있다.

 

이사는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인생의 깊은 변화를 수반하는 행위이다.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것을 넘어, 과거의 자신을 새로운 장소로 옮기고, 때로는 그것을 재정의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적되는 부담과 책임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살아온 세월 동안 씻어내지 못한 묵은 감정들이랑 냉장고 속 얼려버린 차가웠던 시간들은 해동하듯 쏟아내어 탈탈 털어버리는, 이사 과정에서 과거의 무거웠던 감정을 정리하는 치유의 순간으로서, 단순한 물리적인 정리를 넘어, 감정적인 정화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먼지 낀 가족사진을 떼어내며, 오랜 시간 잊혔던 기억들과 마주하는 순간은 특히 감동적이다. 찾지 못했던 토끼 인형 하나가 바닥에 하얀 발자국을 콕콕 찍으며 문밖으로 걸어 나가는 상실과 이별,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남긴 흔적들을 은유의 본질적 묘사로서 반주하고 있다.

 

모두 다 떠나고 난 빈 창문틀엔 통증 앓던 사랑니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과거의 아픔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것도 곧 떠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배웅」에서 보는바와 같이,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순간의 쓸쓸함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순간을 서정적인 심미성을 드러내고 있다.

 

삶을 영위하는 한 울타리를 옮긴다는 것, 이사라는 생활의 변화를 통한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인생의 여러 단계를 되돌아보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신을 재발견하는 과정을 객관적 사유로서의 아름다움을 서술화하여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저 거친 눈발이

 

​사나흘에 한 번씩은

술에 못 이겨 주정을 토해내시던 아버지

뒷모습 같은

저 눈발이

 

​강을 건너와

내 앞에다 눈물을 쏟는다

 

'아시나요

담장 밑 어머니의 울음을

그 오랜 시간을 붉게 물들인 봉선화 눈물을

 

​아득히,

너무나 아득해서 이제는 잡을 수도 없는

그리움을 어찌해야 하나요'

 

​눈발은 자꾸만 몰려와

참았던 눈물을 쏟아놓고 떠난다

「아득히, 너무나 아득한」전문

 

 

삶의 고개를 넘는 일은 눈물로 쏟아내고야 마는 아픔이리라.

고향의 꿈과 그리움, 우리 부모님시대에 겪어야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무게는 참으로 아픈 눈물이 되는 것이리라. 눈발이 날리는 추운 겨울날, 아버지의 등에 진 삶의 무게가 한잔 술로 풀어헤치는 무게.

"아득히, 너무나 아득한" 살아가는 슬픔을, 자연 현상인 눈발을 통해, 애증과 그리움으로서 맑게 채색된, 한편의 은유적 수채화로서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의 거친 삶의 뒷모습에는, 아버지의 존재가 남긴 감정의 무게와 그 영향의 시각과, 술에 못 이겨 주정을 토해내시던 아버지 뒷모습 같은 눈발이 아버지의 아픔이기만 했겠는가. 아버지의 힘겨운 삶과 그로 인한 과거의 슬픔이, 담장 밑 어머니의 울음이 되어, 그 오랜 시간을 붉게 물들인 봉선화 눈물이 되었을 봉선화.

 

이제는 "아득히, 너무나 아득해서 잡을 수도 없는 그리움을, 눈발이 몰려와 눈물을 흘리며, 카타르시스를 나타내고 감정의 순환과 정화 과정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해소하며, 과거로부터의 거리두기와 그리움, 그리고 슬픔의 해소와 정이, 강렬하고도 섬세함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텃밭 귀퉁이 앉아 남루의 세월을

깁고 계시던

흰 수건 머리에 두른 젊은 엄마

 

​오일 장터 파하고도 며칠을

술 그림자 지고 오시던 당신 걱정에

늦은 밤 토담 밑 촛불 밝혀 두시더니

 

​손도 발도

하물며 텅 빈 몸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푸른 병상에서의 해탈 이후

 

​오뉴월 파꽃은

점점 어머니를 닮아 핀다

 

​홀로 선 세월의 무게 어찌 견디려고

저렇게 하얀 머리가 되도록

번뇌를 안고 서있는가

​「파꽃」전문

 

 

고단했던 삶과 불멸의 모성애를 자연의 상징을 통해 스팩트럼하게 풀어내고 있는 "파꽃"은 어머니의 삶을 묵묵히 견디는 자연의 한 조각으로서,  어머니의 존재감과 희생, 그리고 어머니의 무한한 내면의 힘을 거울처럼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텃밭의 귀퉁이에 앉아 있던 남루의 세월을 깁고 계시던 흰 수건 머리에 두른 젊은 어머니의 삶이 단순히 일상의 연속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삶을 꿰매어 나가는 끊임없는 노력의 연속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일 장터 파하고도 며칠을 술 그림자 지고 오시던 당신 걱정에 늦은 밤 토담 밑 촛불 밝혀 두시던 어머니의 고심과 걱정, 그리고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헌신, 가족을 위해 늦은 밤까지 촛불을 밝혀두는 모습은 어머니의 가족을 향한 빛과 따뜻함을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어머니가 겪는 육체적 고통과 그로 인한 정신적 해방을 암시하며, 병상에서의 "해탈 이후"의  삶의 무게와 아픔에서 벗어나 해탈의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어머니의 영향력과 기운은 계속해서 주변에 남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오뉴월 파꽃은 점점 어머니를 닮아 피는 것과 같이, 어머니의 모습과 파꽃이 서로를 반영하고 있으며,  파꽃의 흰색은 순수함과 어머니의 노고를 상징하며,  어머니의 삶이 자연 속에서 계속적으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감내해야 했던 삶의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어머니가 시간과 함께 변해갔음을 나타내며, 어머니의 인내와 지혜를 찬미하고 있는, "홀로 선 세월의 무게 어찌 견디려고 저렇게 하얀 머리가 되도록 번뇌를 안고 서있는가" 5연에서 서술화하며, 어머니의 삶이 자연의 일부인 파꽃과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어머니의 삶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서정적 깊이와 삶의 의미로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수급자세요 라고 묻는다

 

​동사무소 살아온 이력 좀 떼러 갔더니

아마도 이름자 꼬리표에 무료라는 뭔가 붙었나 보다

​나이테를 새기듯 평생을 끌어안은

반송되지 못하는 세월

그 이력엔 이제 청춘이 없었다

다 떠나고 빈집만 남은

때로는

주인 잃은 편지가 문 앞을 서성여도

대문 옆 기둥에 붙어 있는 삭은 우편함은

손을 내밀어 받아 주질 못해

이미 들어찬 편지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손길을 기다리지만

온기를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살피지 못한 안부 하나 꽂혀

서성이던

그 집 앞

​며칠 전 동사무소 직원이 붙여주고 간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가

나를 빤히

보고 있다

「그 집 앞」전문

 

개인의 삶이 어떻게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 가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도 조용히 존재감을 유지하는 묵직한 힘을 나타내고 있는지「그 집 앞」은 삶의 여정과 그 속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소외감, 기억과 망각, 그리고 존경받아 마땅한 존재에 대한 명예의 회복을 감성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명패는 하나의 집의 주인으로서, 사회로부터 받아야 할 존중과 감사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삶에서 겪게 되는 소외와 대비되는 인정과 명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가 나를 빤히 보고 있다"와 같이, 이는 늦게나마 주어진 공적인 인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인의 삶이 사회적 구조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잊히는지를,  인간이 경험하는 무관심과 소외,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작은 인정의 가치를,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삶을 섬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덜컹하고 잠겨있던 빗장이 풀렸다

오래도록 닫아두었던

고향 문턱이

늦게 온 나를 받아주듯 대문을 활짝 열었다

살지 못해 떠난 사람들과

떠나지 못해 사는 사람들​

드문드문 사람 속에 숨어있던 빈집들과

인적 끊겨 구부러진 골목길은

오늘날 고향의 모습이다

명절날 인정이 그리운​

몇 안 남은 노인들은

유모차를 밀며 하나 둘 마을회관으로 모여들고

사람 손길이 닿아 풍요로웠던 들녘은

날 선 기계음만 가득하다

서로가 떠나간 인심을 대하듯 파랗게 설익어있다

빈집 대문이 살아있는 사람들 맘속에서

자꾸만 덜컹거린다

「귀향, 추석즈음의 」전문

 

마음이 여물어가는 세상의 모습이라면, 푸른 들녘을 바라보며 한없이 넓어가는 가슴을 열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서 변모해버린 고향의 현실과 그곳에 남은 사람들의 삶이,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고향에 대한, 환영과 낯섦으로 다가서며, 이별 후 다시 만남의 순간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이들과, 여전히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공간적 이동이 개인과 공동체에게 미치는 영향을, 현대 사회에서 빈번한 인구 이동의 현상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고향의 모습이, 기계와 기술의 발달 속에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대체하는 현상은 고향이 가진 역사적, 정서적 가치의 상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 현대 생활에 적응해야 했던 이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불안정함과, 빈집의 대문은 고향과의 연결고리가 여전히 존재하며, 그 소리는 과거와 현재,  잃어버린 것과 남겨진 것 사이의 간극을 상징하는 것이다. 

 

추석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통해 고향이라는 공간과 그곳에 얽힌 개인의 정체성, 사회적 변화의 교차점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복잡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귀향, 추석즈음의 」에서 고향의 변화된 모습과 그로 인해 생긴 내면의 갈등을 통해 현대인의 삶과 그 정체성이 심미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빛도 동면에 들 시기

 

그저 그런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차가운 웃음 흘리는 아침 햇빛

 

​자꾸만 골방을 찾아들듯 가슴 섶을 헤집는

구석진 자리 노숙인들 사이로 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색깔도 맛도 없는 그런

밥상을 앞에 둔 아침 풍경이다

 

​그것은 나비 날개깃에 앉은 희망이었다가

때로는 낚싯줄에 끌려 올라오는 붕어의 아픈 몸부림 같은 절망이기도 하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쌓아 올리는 신도시 타워크레인

그 그늘 밑엔

햇빛 한 올이 간절한 쪽방 촌이 있다

 

​햇빛은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기도 하지만

한쪽에선 그늘을 주기도 한다

 

​그 이면에는 햇살론을 펼치는 그림자가 늘 따라다녔다

빛은 그림자로 자라난다

「빛의 이면[裏面]」전문

 

현대 사회의 이중성과 대비가 갖는, 빛과 그림자의 화려함 속에 숨겨진 그늘진 현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이중적 현실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인식의 중요성을 현대 사회의 진실과 사색의 여백을 공감대로서 견고하게 드러내고 있다.

 

 빛이 있음으로써 그림자가 존재하며, 그림자는 빛 없이는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현상은 이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에서 빛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에도 휴식과 회복의 순간이 필요하며, 빛의 따뜻함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느껴지는 차이와 대비를 통해 우리 삶의 소박함속에 내재된,

퍼즐 조각을 맞추듯 쌓아 올리는 신도시 타워크레인, 그 그늘 밑엔 햇빛 한 올이 간절한 쪽방 촌에서, 현대화의 진행과 그 속에서 간과되는 인간의 삶의 공간이, 발전의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빛의 이면[裏面]」에서, 빛은 사회의 모든 구석에 동등하게 닿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결과로 생겨나는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때로는 빛이 가진 무관심과 거리감을 상징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이제 시의 아름다움으로 덧입은 이한명 시인의 서정과 사랑, 고뇌 그리고 남모르는 눈물의 깊이를 아름답게 담아낸

제2시집[그집앞] 이 2024년 청룡의 기운을 받아 승천하고 있다.

 

앞날에 큰 박수를 보내며 한국문단, 그리고 더 나아가 전세계에 우뚝 서는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원하며 서평을 마친다.
<표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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