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창현
내가 만난 절세미인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데칸쇼'라 해서, 데칼트, 칸트, 쇼펜하우엘을 배웠고, 그때 마침 유행하던 까뮈 싸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작가의 책을 읽었다.
한 친구가 자살하자, 자원입대하여 항만사령부 자동차대대 운전병을 하다가, 제대하자 달랑 성경 한 권 챙겨가지고 남해의 끝동네 미조란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몇 달 뒤 더 외진 곳을 찾아 욕지도로 건너갔다.
거기 파도가 발 밑으로 밀려오던 바닷가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다. 하숙집 주인 삼십대 초반의 아주머니는 욕지도에선 보기 드믄 미인이었다.
남편이 원양어선 선원이던 그는 허구헌날 날더러 풀이섬에 같이 가보자고 노래를 불렀다. 욕지도 사람들은 그 섬을 초도(草島) 혹은 풀이섬이라 불렀는데, 아주머니 고향이었다. 하도 경치가 좋다며 가자고 보채는 바람에 하루는 둘이 뗀마를 타고 풀이섬으로 갔다.
그런데 배가 자부랑깨 포구를 벗어나자마자, 나는 바싹 얼어붙고 말았다. 큰 바다에 나가니 뗀마는 한 잎 가랑잎 이었다. 집채만한 파도에 이리저리 밀리는 품이 금방이라도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대학 시절 미식축구 선수였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시합도 해봤고, 덩치 자랑도 했다. 그런데 여기선 육지 남자는 건장해도 아무 소용없다. 두 손으로 뱃전 바짝 움켜잡고 얼굴 하얗게 질려버렸다.
오히려 여인이 연약한 손목으로 거센 파도 속을 태연히 노를 저으며, 여기는 섬과 섬 사이라 조류가 급하다고 일러준다. 육지와 섬 사람의 차이였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파도를 넘어 도착한 곳이 풀이섬이다. 배 닿은 곳은 동백 숲 밑이다. 자갈 덮힌 둥그런 만(灣)이 형성되어 있었다. 물은 유리알처럼 투명해서 밑이 훤히 보였다. 헤엄치는 팔뚝만한 고기도 보였고, 멍게나 소라도 보였다.
나는 전에 '수정같은 맑은 물(Christal water)'이란 표현이 문학적 수식어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곳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운 카프리에 섬나라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수정처럼 맑은 바닷가에 처녀들 미소가 풍기네.'라는 노래 가사는 바로 거길 말하는듯 싶었다.
빈 배 하나 파도에 몸을 맡긴채 흔들리고, 바람은 부드럽고 공기는 신선했다. 물끼 머금은 보석처럼 영롱한 자갈은 자르르 소리 내면서 파도에 씻기고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거기 동백나무 숲에 떨어진 낙화는 붉은 카펫을 깐 것처럼 보였다. 아마 고갱이 만난 타이티 풍경이 이랬을 것이다. 거친 텃치 하는 화가가 땅에 붉은 물감 잔뜩 칠한듯 싶었다.
집은 서너 채 밖에 없었다. 저마다 커다란 동백나무 팽나무 밑에 있었다. 담도 없었다. 아줌마네 집은 그 꼭대기에 있었다.
앵두가 붉게 익은 장독대 옆에 소가 매여있었다. 사람 기척을 듣고 고개를 들자 딸랑!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정적을 깬다. 싱싱한 호박줄기는 소리없이 지붕 위로 뻗어가고 있다.
'있나?'
언니가 묻자
'언니야!'
동생이 대답한다.
방문이 열리더니, 얼굴이 보였다.
처녀는 언니보다 더 미인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늘씬한 몸매, 가늘고 짙은 눈섶이, '고독'이란 영화에 나온 엘리자벹 태일러 같다. 천부적인 남국의 미녀였다. 삼단같이 늘어진 머리칼이 너무나 곱다.
주변에 동백꽃 지천으로 피었겠다, 귓가에 동백꽃만 꽂으면 동백나무 춘(椿), 계집 희(姬), '춘희' 아닌가. '듀마휴이스'의 소설 여주인공 '춘희'가 저랬겠다 싶었다.
'태양이 쓰다듬어주는 향기로운 나라에서, 나 알았었나니, 남모를 매력 지닌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을’에서 시작되어, ‘마담, 그대 만일 영광의 쎄느강이나, 푸른 르와르강가로 가신다면, 고풍의 성을 아름다이 함직도 한 미녀’로 끝나는 보들레르의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에게'란 시 속의 여인이 저랬겠다 싶었다.
언니와 미리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를 의식한 처녀 얼굴 복숭아꽃 보다 더 붉어진다.
‘아부지는?'
언니가 묻자,
'밀감나무 심으러 산에 갔다.'
동생이 대답했다.
언니는 '아부지 보고 오께.' 한마듸 말 남기고 산에 가더니,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흘레 부칠려고 암말한테 종마 데려온 것 같았다. 언니가 노랠 부르며 풀이섬 가자고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빈집에서 처녀와 나는 할 일이 없다. 나는 마당가에 날고있는 고추잠자리만 보고 있고, 그는 저만치 있는 말못하는 누룽이 황소만 보고 있었다.
시선을 피하는 처녀는 천상 사슴이었다. 산에서 나무하고, 바다에서 뗀마 젖고 고기 잡아 그런가. 자맥질하고 미역 뜯어 그런가. 몸매가 야생 사슴처럼 늘씬했다. 눈망울은 사슴처럼 순하고 맑았다.
그가 바가지로 볏짚을 퍼주니, 소가 코뚜레 위로 혀를 낼름 내밀어 손을 햟는다.
'소가 몇 살 짜리요?'
내가 말을 걸자,
'..... .... .... ....'
처녀는 늦가을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서리 맞은 홍시가 된다.
수줍음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계산된 교태와 수줍음의 차이는 인공과 자연의 차이만큼 크다. 나는 동백꽃같이 아름다운 그에게 동박새처럼 날개 퍼덕이며 힘차게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고 얼마 쯤 있었던지 모르겠다. 손바닥만한 쪽마루 저편에 어색하게 앉았던 처녀가 부얶에서 불을 붙인 모양이다. 마당 낮으막한 굴뚝에서 연기가 나더니 청솔가지 태운 알싸한 냄새가 코에 닿는다.
잠시 달거락거리는 소리 나더니 처녀가 개다리 밥상에 뭘 얹어 내 앞에 놓는다. 이것이 내가 평생 처음 받아본 한 처녀가 오로지 한 총각을 위해서 차려준 밥상이다.
상 위엔 돌나물 한 접시, 간장 한 종지, 고구마 몇개 담긴 소쿠리만 달랑 놓여있었다. 욕지도는 주식이 고구마라 밥은 없었다.
식사 후 한참 옛날에 보던 날개 달린 사자가 그려진 비사표(飛獅標) 통성냥에서 성냥을 꺼내 담배불 을 부쳤다. 처녀가 하얀 대접에 찰랑찰랑 물을 떠와서 조심스레 내 옆에 놓더니, 저만치 떨어져 쪽마루 끝에 앉는다. 내외는 하지만 아예 가버리진 않는다.
'저 꽃 이름은 뭐라꼬 합니까?'
말을 걸어보니, 처녀는 오직 얼굴만 붉힌다.
사실 그 나무는 유도화(柳桃花)다. 잎은 버들같고 꽃은 복숭아꽃 같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사는 처녀가 버들이나 복숭아꽃 보다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식사라도 하지 그래요?'
억지로 또 말을 거니 이번에는 놀래서 뒤뜰로 달아나 버린다. 영판 사슴이다. 쳐다만 봐도 시선을 피하고, 말만 걸면 후다딱 달아난다.
인적 없는 마당엔 숲매미만 울고, 지붕 덮은 감나무는 시퍼런 감만 주렁주렁 달았다.
박목월의 시를 속으로 외워보았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흙담 안팍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슴, 구름처럼 살아라한다. 바람처럼 살아라한다.
아주 이 처녀와 여기서 들찔레처럼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않는 것 아니었다. 그는 도시의 그 어느 처녀도 비교할 수 없는 천하절색이다.
아버지와 언니는 일부러 점심을 굶었는지, 해거름에사 내려왔다.
'면에서 밀감나무를 거저 심으라고 보내줘서.'
노인이 변명 비슷한 말을 했고,
'제주도는 밀감나무 하나만 키우모, 자식 대학공부 시킨다 않캅디꺼? 3년 뒤에는 우리도 밀감 수확합니더.'
언니는 누구 들으라는지 해설을 한다.
당시는 관에서 밀감 재배를 권장하던 때다.
이렇게 풀이섬을 다녀왔다.
늦게 뗀마 타고 바다로 나올 때 어둠 머금었던 그 진홍빛 물결은 두고두고 잊지못하겠다. 산 위에는 아직도 황금빛 구름이 몇 가닥 남았는데, 어느새 먼 등불은 별처럼 빤짝이기 시작했다. 그 집의 아주까리 장명등일 것이다. 그가 나에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뗀마는 피아노 은반 같은 바다를 노질하며 지나가고, 은파는 왈츠를 추며 끝없이 따라온다.
장만영의 시가 생각났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조수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았다. 달은 과일보다 향기롭다. 동해 바다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곱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아래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당시 욕지면 전체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 별로 없었다. 거기 군 제대한 스물 세살 청년이, 부산도 아니고 서울서 대학 다닌다는 청년이, 글 쓴다며 원고지와 성경만 들고 나타난 것이다. 아버지와 언니는 아닌 말로 애가 탔을 것이다. 아주 작심하고 내 눈치를 살폈다.
그때 내가 만약 그 처녀와 맺어졌다면, 나는 지금 오렌지 향기 바람에 날리는그 섬의 주인일 것이다. 동백꽃은 해마다 붉은 카펫을 깐듯 해변에 떨어질 것이다. 둘은 낙원의 연인이 되어 손 잡고 그 위를 거닐 것이다.
노인이 심었던 밀감나무 모두 누구 것이랴. 그때 만약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나는 평생 유토피아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와 섬에 핀 동백꽃 진달래꽃 할미꽃 친구하고, 우럭 감성돔 친구하고, 소라 조개들과 친구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나는 시를 읽을 필요가 없다. 풀이섬 생활 그 자체가 시이기 때문이다.
아! 그러나 사람은 항상 엉뚱한 길로 빠지곤 한다.
나는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Tabula rasa(백지)같은 순진무구한 처녀를 외면하고, 서울로 왔던 것이다.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 귀한 황야의 백합을 외면하고 50년 전에 나는 서울로 올라와서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는 초라한 이름 없는 봉급생활자로 전락했던 것이다.
□ 김창현
수필가. 청다문학회 회장
http://seoultoday.kr/homepage.php?minihome_id=k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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