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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의 얼굴은 정체가 불명하다 / 장종권

등록날짜 [ 2018년12월28일 11시44분 ]

[장종권 칼럼]

시의 얼굴은 정체가 불명하다 

 

 

누가 진실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누구도 진실을 알 수는 없다. 그가 안다고 하는 진실 역시 그의 착각이거나 오해일 가능성이 많다.

 

진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아서 수시로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 못된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진실이란 애시당초부터 거짓과 본질적으로 같은 얼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진실은 안타깝게도 상대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나의 진실과 너의 진실은 제아무리 서로 진실이라 주장해도 상반된 얼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진실의 얼굴은 남자이기도 했다가 여자로 둔갑하기도 하고, 천사의 얼굴이었다가 갑자기 악마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진실을 주장하는 사람의 얼굴이 더 거짓일 수도 있고, 거짓을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더 진실할 수도 있다. 진실은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때에 따라, 입장에 따라, 여우처럼 둔갑하며 재주를 부린다. 세월이 흐르면 감쪽같이 바뀌기도 하고, 죽은 것이 신기하게 살아나기도 하고, 살아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하루아침에 허망한 주검으로 변하기도 한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만이 오직 하나의 진실이고, 살아 있기 때문에 무시로 변해버리는 것이 진실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진실이라 주장해봐야 자신만의 진실에 지나지 않을 수 있고, 진실하자고 해봐야 기껏 자신의 주장에 동조해 달라고 조르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일까.

 

진실이라는 가면 속에 숨겨진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정말 진실이라 주장한다 해도 그 진실이 진정한 진실이기나 할까. 혹시 무지에서 오는 주장이거나 심각한 착각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상대의 진실은 이미 그 얼굴이 다른 데 어쩌자고 자신만의 진실이 진정한 진실의 얼굴이라 주장하는 것일까. 자신의 진실도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나와는 다르지만 상대방의 진실도 진정한 진실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 아닐까. 진실은 분명한 자기 얼굴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고, 마음먹은 대로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옳은 것도 당신에게만 옳은 것일 수 있다. 그 옳은 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미 대화는 물 건너 간 것이 아닐까.

 

진실이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을 현혹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강자의 논리로, 혹은 우월한 자의 논리로, 주장하는 진실은 더욱이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 한편으로 왜 진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것일까. 진실이 과연 세상을 평화롭게 해줄 수나 있을까. 진실이 불쌍한 사람들의 밥이나 되어 줄 수 있을까.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말 진실이 필요하기나 한 것일까. 존재하지 않는 진실의 얼굴을 팔아 영달을 추구하거나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일은 혹시 없을까.

 

시에 있어 진실은 무엇일까. 무엇이 시의 진정한 얼굴일까. 유행처럼 번지는 기묘한 시들은 시의 진실로부터 진입 허가나 받은 것일까. 우리는 시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앞서가는 시들은 시의 진정한 얼굴을 기억하고나 있을까. 우리는 시의 진실이 무엇이라고 믿는 것일까. 시의 진실은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시의 어머니는 누구이고 시의 아버지는 누구이고 시의 자손들은 또 누구일까. 이 시대의 시인들일까. 시의 진정한 얼굴과 시의 태생적인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는, 그래서 자신이 마치 진정한 시를 알고, 진정한 시를 쓰고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시는 아직 자신의 얼굴도 정체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불명한 시의 정체로 인해 오히려 우리는 살아있는 시와, 그 시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나오는 신비로운 향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시를 분석하고, 시를 평가하고, 시의 얼굴을 안다고 자부하거나, 그래서 혹시라도 시의 진실에 접근해 있다고 흥분하는 착각은 위험하다. 시의 진실은 그 정체가 불명하다.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계간 《리토피아》 편집인 겸 주간

http://seoultoday.kr/homepage.php?minihome_id=j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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