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구 칼럼]
보스턴 티 파티
날씨가 따뜻한 8월 어느 날, 우리는 손자의 손을 잡고 아들을 따라 보스턴 시의 콩그레스 스트리트 다리 근처에 있는 ‘보스턴 티 파티 선박과 박물관(Boston Tea Party Ships and Museum)’을 찾아갔다. 보스턴 티 파티란 ‘보스턴 차 사건’을 말한다.
우리 일행은 공연장의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가 관객들 앞에 나타나 모자를 벗고, “여러분은 미국 역사의 진로를 바꾼 보스턴 티 파티를 되새김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였다. 그러자 다른 남자가 “친구여, 미국 혁명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티 파티를 재현해 봅시다.”라고 외쳤다.
관객들은 바다에 떠 있는 모형 선박으로 안내되었다. 안내자는 목청을 돋우어 이렇게 말하였다. “1773년 12월 16일 저녁 보스턴 시민 116명은 인디언으로 변장하고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인 영국 선박 3척을 습격하여 342개의 차 상자를 끄집어내서 바다에 던졌습니다. 여러분도 갑판에 있는 차 상자들을 바다에 던져 보십시오.”
나는 모형 차 상자 하나를 집어서 바다에 던졌다. 다른 관객도 모형 차 상자를 들어서 바다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손자가 옆에서 환호성을 올렸다. 우리가 구경하는 배는 그 당시 차를 싣고 온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선박 세 척 중의 하나인 ‘브리그형 비버’의 모형이다. 목제 선박인데 단단하고 정교하게 건조되었다.
자료에 보면 영국은 영국 동인도회사에 차 무역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한편, 미국 식민지 상인들의 차 무역을 금지시키는 차 조례(Tea Act)를 제정하였다. 이에 보스턴 시민들은 식민지 자치에 대한 영국의 지나친 간섭에 격분하여 보스턴 티 파티를 일으켰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영국은 보스턴 항구를 폐쇠하였다. 1774년 9월 조지아 식민지를 제외한 영국의 북아메리카 12개 식민지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의 카펜터스 홀(Carpenter’s Hall)에 모여 제1차 대륙회의를 열고 영국 상품을보이콧하기로 하였다.
선실을 둘러보고 박물관 후문에 이르니 벽면에 보스턴 티 파티에 참가한 애국자들(patriots)의 명단이 붙어 있다. 우리는 영화관으로 들어가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가 1775년 4월 보스턴 서북쪽에 있는 렉싱턴(Lexington)과 콩코드(Concord)에서 최초로 벌였던 전투를 관람했는데, 민병대가 영국군을 격파하였다.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 대표들은 1775년 5월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에서 제2차 대륙회의를 개최하여 대륙군을 창설하고 조지 워싱턴 버지니아 대표를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다실로 가서 보스턴 항구가 바라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다실에서는 보스턴 티 파티 때에 애국자들이 바다에 던졌다는 차와 똑같은 차를 판다고 하였다. 아들이 차를 사서 주기에 마셨는데 맛이 구수하였다. 아내는 미국 독립 선언서(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의 기초 위원인 토머스 재퍼슨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머그잔을 샀다.
우리는 올버니(Albany)에 있는 아들네 집에서 나흘 밤을 묵고 시애틀 근교에 있는 밀러스 크리크 마을로 돌아왔다. 나는 서재에 틀어박혀 독립 선언서를 읽어 보았다. 1776년 7월 4일 제2차 대륙회의에서 채택된 이 문서는 ‘한 국민(one People)이 다른 국민과의 정치적 결합을 끊고 자연과 자연의 신의 법(the laws of nature and of nature’s God)이 부여하는 독립과 평등의 지위를 떠맡는 것이 필요할 때에 그들은 독립을 선언해야 한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문장이 간결하고 무게가 있다.
미국 헌법은 1787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스 홀에서 열린 헌법 제정 회의에서 제정되었으며 그 후 27개의 수정 조항이 헌법에 추가되었다. 그 헌법의 전문(前文)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다.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in Order to form a more perfect Union, establish Justice, insure domestic Tranquility, provide for the common defence, promote the general Welfare, and secure the Blessings of Liberty to ourselves and our Posterity, do ordain and establish this Constitution for the United States.”
이 글을 우리말로 옯기면, ‘우리 미국 국민은 더 완벽한 연방을 만들고, 정의를 세우고, 국내의 안녕을 도모하고, 공동의 방위를 떠맡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며, 우리와 우리 후손이 자유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 미국 헌법을 제정한다.’라는 뜻이다. ‛우리 즉 국민’이란 뜻인 ‘We the People’이 맨 앞에 와 있다.
우리 민족 대표 33인이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의 독립을 내외에 선언한 기미 독립 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도 읽었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世界萬邦)에 고(告)하야 인류 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此)로써…….”라고 씌어 있는데, 오등(吾等) 즉 ‘우리들’이라는 말이 맨 앞에 있다. 시작 문장이 짧고 힘이 있다.
1987년 10월 29일 개정된 우리나라 헌법의 전문(前文)은 이렇게 적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 · 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 · 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 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나는 헌법 전문(前文)에 대해 할말이 있다. 첫째 ‘우리 대한 국민’이란 주제어는 전문의 맨 앞에 와야 한다. 둘째 ‘3 · 1운동으로 건립된……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는 부사어는 너무 길어서 참뜻을 알기가 힘들다. 헌법 전문이란 명료하고 짧으며 힘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헌법을 개정할 때는 전문을 다음과 같이 고쳐 보면 어떨까. ‘우리 대한 국민은 3 · 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불의에 항거한 4 · 19 민주 이념을 받들고,……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기 위하여,……국민 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우리 헌법은 9차례의 개정을 거쳤지만 전문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국민’이라는 어순이 바뀌지 않았다. 전문은 제헌 헌법의 글보다 오히려 길어졌다.
□ 이경구
前 외교관.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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