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칼럼]
삶속에서 보물을 발견할 수 있어야
인생 삶의 과정이나 결과는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성공된 삶을 이룩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실패된 삶을 살아간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어떤 사람은 ‘부’를 크게 이룩한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가난 속에 허덕이고 있고, 또 건강하게 혹은 병마 속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명예를 크게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러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사는 사람도 있다.
이웃 등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있고 비난 받는 사람도 있다. 자유와 행복 속에 사는 사람이 있고 속박과 불행 속에 사는 사람도 있다. 왜 이렇게 삶의 질과 형태가 각각 다를까? 문제는 「진실의 미 발견(未 發見)」에 있다. 조선후기의 대학자인 정약용(호: 다산)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하는 중에 남겼다는 「하 피 첩」이라는 편지는, 후대에 남겨진 기록에 이름으로만 전해 내려 올뿐, 실존하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귀한 보물이 2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발견되었다. 어느 건설현장의 소장이 그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날, 앞길을 지나가는 어느 할머니의 수레에서 특이하게 보이는 헌 책자를 발견하였고 그것을 할머니에게서 얻어 전문가에서 감정 의뢰 하였더니, 그것이 바로 말로만 전해오는, 역사적 가치가 대단한 ‘하 피 첩’ 이었다고 한다.
‘성서’에서도 ‘보물의 비유’ 말씀이 있다. 내용인즉, 밭을 갈다가 그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이야기이다. 그러할 수 있었기에 ‘부’를 크게 이루고 이웃을 도우고 사회에 기여하며 행복한 삶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 농부가 평범한 삶속에서 보물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는 점이다.
그것을 보고 보물인 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보물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현장소장이 「하 피 첩」을 발견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폐지로 취급했던 것과는 달리 현장소장은 그것을 보고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쓰레기로 폐기될 번한 그 소중한 보물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물들을 우리 스스로가 쓰레기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자신의 존재, 배우자, 가족, 직장, 환경 등의 진실과 가치에 대해 간과하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 속의 보물을 발견하여 성공된 삶을 펼쳐 가기를 소망해 본다.
□ 큰길 김진수
소설가.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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