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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가 아끼는 헌책 두 권 / 나창호  

등록날짜 [ 2019년01월25일 14시49분 ]

[나창호 칼럼]

내가 아끼는 헌책 두 권 

                        


 나에게 표지는 물론 속지까지 누렇게 바랜 헌책 두 권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둘 다 환갑이 지난 나이배기다. 세로쓰기로 되어 있고 한자가 많이 섞여서 읽기에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책장에 잘 모셔놓고 아끼는 책이다. 


 간략히 책 소개를 해본다. 한 권은 단기4290년(서기1957년) 11월생인 사상계(思想界)이고, 또 한 권은 단기4291년(서기1958년) 3월생인 심우(審友)다. 사상계는 누구나 알겠지만 심우는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심우는 현재의 감사원이 심계원(審計院)이라 불리던 때, 심계원 내 심우회에서 발행한 책이다. 


 사상계와 심우는 햇수로는 1년차가 나지만 개월 수를 따져보면 불과 3개월 차이 밖에 나지가 않는다. 하지만 둘 다 나이배기라서 늙은 티를 낸다. 사상계는 구입할 때부터 표지가 너덜거려서 딱풀로 붙여야 했고, 목차는 떨어져 나가고 없다. 3개월 늦게 나온 심우는 표지색이 좀 바랬지만 그런대로 깨끗하고 목차도 온전하다.


 이제 책 소유경위를 말해보겠다. 할 일이 없어 무료하던 어느 날, 딱히 구입할 책을 정하지 않은 채 중앙시장 헌책방 구경을 나섰는데, 거리에 즐비하던 헌책방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이제는 몇 군데만 남아 있었다. 급할 것이 없는 나는 좋은 책이 눈에 띄면 살 요량으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책 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원동사거리 서쪽 코너에 자리한 ‘남자 빼고 무엇이든 삽니다.’라는 재미난 이름의 가게에도 들리게 되었다. 헌책방을 겸한다고 하지만 헌책은 별로 없고 그림, 도자기, 청동아트, 고가구, 민속품 등 온갖 물건들로 가득 했다. 이사 하는 집에서 구해왔다는 생활용품까지도 즐비했다. 무엇이든 산다더니 말 그대로 없는 물건이 없었다. 처음에는 나도 호기심이 가는 재미난 물건들부터 구경했다. 


 그러다가 아까 슬쩍 본 한쪽 귀퉁이의 헌책들에 눈길이 갔다. 가게 주인이 헌책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지 책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이 책 저 책 뽑아봤지만 볼만한 책이 없었다. 그냥 나갈까 하는데 누렇게 변한 1957년 11월호 사상계가 눈에 들어왔다. 표지도 속도 누래서 진짜 헌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넘겨보고 도로 꽂으려는데 겉표지의 글제목과 필진 중에 학교 다닐 때 익히 들었던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감회금석(感懷今昔)-주요한, 남자란 것·여자란 것-염상섭, 일각선생(一角先生)-유주현.


 어라? 내친김에 속 내용까지 유심히 살펴보니, 표현과 전달의 이론-최재서, 시인을 통해서 본 한국문화-월탄 박종화, 백지의 기록-오상원(吳尙源), 맥령(麥嶺)-이무영(李無影) 등도 실려 있었다. 수필, 소설, 논문 같은 것들이었다. 아쉬운 것은 단편으로 끝나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이 연재물이어서 부분만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얻을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헌책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냐하는 생각과, 기왕에 나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주인에게 값을 물으니 오래된 책이라면서도(책의 상태가 원체 나빠서인지), 등산길에 누런 양재기로 파는 막걸리 한 잔 값을 부르는 것이었다. 의외로 싼 값에 속으로 좋았지만 달랑 그 값만 치르고 나오기는 좀 멋쩍었다. 알았다하고 한 권을 더 고르기로 했다. 


 사상계가 꽂혀 있던 부근에서 두께가 다소 얇은 심우(審友)라는 누런 책을 뺐다. 누군가의 수필집이려니 생각했는데 표지를 보니 ‘심계원내 심우회 발행’이라고 되어있다. 심계원(審計院)이라면 감사원의 전신이 아닌가. 


 목차를 살펴보니 역시 ‘결산검사와 심의’, ‘자산재평가법 해설’ 같은 업무관련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더 자세히 보니 외부필진에 의한 흥미 있는 글들도 눈에 띄었다. 
 연재되는 중편소설 ‘행복한 남자’를 비롯해서, 사화(史話) ‘명재상 언행록’, 전기(傳記) ‘우리나라의 명인전’(여기에는 원효, 강감찬, 월명사가 실려 있었다), 라디오 드라마 ‘싹트는 혼’, 유주현의 수필 ‘끽다만담(喫茶漫談)’같은 것들이었다. 외부필진의 글만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사장에게 값을 물으니 또 누런 양재기 막걸리 한 잔 값만을 내란다. 나는 흔쾌히 값을 치르고 헌책 두 권을 손에 넣었다. 


 나는 지금 이 책들을 소설 읽듯이 단숨에 읽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야금야금 읽고 있다. 한자가 많이 쓰여 페이지마다 줄들이 시커멓게 보이지만 다행이 나는 중·고등학교 때 한자를 배워서 읽는데 그리 큰 불편함은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된 큰 문인들의 글을 읽다 보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또, 해방 된지 겨우 10년 남짓하고, 정부수립 후 바로 6.26 남침 전쟁을 겪고 난 후의 혼란한 사회상도 엿볼 수 있다. 대학교수를 비롯한 당대의 내로라하는 식자층들의 글을 통해서다. 이뿐만 아니라 50년대의 국제상황과, 부국과 빈국의 격차 큰 국민생활상도 엿볼 수가 있다. 그때 미국사회에서는 이미 커피자판기가 사용됐다고 한다. 


 비록 책들이 헐었지만 이래서 나는 아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내 눈에 띈 게 행운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이배기 책들의 운명을 예상해본다. 나는 이들이 100살까지 먹는 것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몇 살 더 많기 때문이다. 책들이 운이 좋아 100살을 먹는다면 나는 그때 쯤 땅속에서 하얀 모습으로 잠을 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운이 나쁘면 100살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끼고 보살펴서 아무런 탈이 없을 테지만 내가 죽고 없으면 책들도 더 늙어 있을 터인데 누가 그 모습을 보려고 할 것인가. 아마도 책장에서 제일 먼저 끌려나와 불에 태워지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힐지도 모른다. 책의 좋고 나쁨은 책을 읽는 사람이 판단할 몫이라서 아무리 오래두라고 권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 아닌가. 


 혹자는 나보고 별 것도 아닌 헌책 두 권을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사는 동안 책을 잘 보살피면서 미수까지는 살게 하고 싶다. 그 때쯤이면 (허튼소린지 모르지만) 사료적 가치가 있다며 기증해달라고 하는 곳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책도 오래오래 살 것 아닌가.

 

 

□ 나창호 

전 부여군 부군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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