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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시장에도 중국인이 80% '장악'

새벽 남구로역 인력시장 르포
등록날짜 [ 2019년02월08일 10시28분 ]

북창동·청계천·영등포 등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 새벽인력시장인 구로동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주변의 인력시장이 건설 경기 불황의 그늘에 깊숙이 잠겨 있다. 이곳에는 40∼50대 일용직근로자들이 일감을 얻기 위해 매일 새벽이면 수백명씩 모여들지만 이들 중 일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건설경기 침체로 건설공사가 갈수록 줄고 있는 데다 비수기까지 겹치면서 일감을 얻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선족을 비롯해 한족, 베트남인, 우즈베키스탄인 등 외국인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여서 내국인 일용직 근로자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 매일 팔려가길 기다리는 3천명

 

설 연휴 전인 2월1일 새벽 4시 30분 기자가 찾은 구로동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주변 새벽인력시장은 이른 시간이지만 인력소개업체가 몰려있는 2번과 5번 출구 주위로 일용직근로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인부들은 패딩, 마스크, 모자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나왔다. 특히 얼굴 전체를 가릴 수 있는 두건형 목도리를 착용한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옷속에 스며드는 찬바람을 모두 막을 수는 없어 보였다.

 

일거리를 기다리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에 맞서 몸이라도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추위는 쉽사리 털어지지 않았다. 겨우내 한파가 잦으면 어쩌나 걱정어린 표정이다.

 

겨울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 속에 본격적인 '장'이 서기 전 한 시간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구청에서 제공하는 온수를 마시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길 건너편에는 조선족이 몰려 일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4차선 도로 중 양쪽 두 개 차선이 승합차로 가득 찼다. 아직 이른 시간 이라서 ‘출근’한 근로자들은 곳곳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새벽 건설근로자 3000여명이 이곳을 찾아 수도권 건설현장으로 나간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경기 서남부, 강북을 제외한 서울 전역 건설현장에 인력을 공급하는 수도권 최대 건설 인력시장으로 꼽힌다.

 

■ 중국인쪽으로 이동하는 일자리

 

건설근로자들은 새벽 4시30분경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운집했다. 통상 이 시간부터 약 한 시간 동안 ‘팀장’들이 해당 일감의 적임자를 뽑아 공급하는 리크루팅(Recruiting)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3000여명이 모두 건설현장으로 나갈 순 없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운집하는 인력은 일 평균 3천여명이다. 중국인이 2000명 이상으로 이곳을 점령한 지 오래고, 한국인은 1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인력 중 일감을 구하는 경우는 30∼40% 수준으로 중국인보다 구직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남구로역 삼거리에서 중국인력이 모인다는 하나은행 앞에는 어림잡아 2000명이 넘어 보이는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이들은 보도는 물론, 차도까지 점령하며 남구로 삼거리의 교통체증을 야기했다. 중국인력들은 굴삭기 등 건설중장비와 택시, 버스, 승합차들과 뒤엉켜 있었다.

 

하나은행 건너편에는 중국인력 규모와 확연히 비교될 만큼 적은 무리가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일감을 찾으러 나온 한국인들이었다.

 

1982년부터 건설현장에서 목수로 일했다는 이모(65)씨는 “중국인력들이 팀 단위로 ‘일당 덤핑’을 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우리나라 인력이 일감 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며 “우리도 하루를 놀 순 없으니 일당을 2만∼3만원 깎아서 현장에 들어가는 날도 많다”고 토로했다.

 

이씨에 따르면 중국인 중에서도 한국어를 할 줄 알고 합법적으로 입국한 조선족 인력은 평균 일당에서 2만∼3만원을 깎고 들어간다. 잡부 기준으로 시세가 일당 15만원 수준인데 불법체류자들은 5만원에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설명이다. 불법임을 알면서도 낮은 인건비를 요구하는 이들을 고용하는 건설현장 탓에 한국인력도 스스로 일당을 깎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 인력이 중국인에게 밀리고 있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하며 씁쓸할 때가 많다”면서도 “그러나 이제는 근로자들이 일감을 구하는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일당이 정해져 있지만, 일감이 안정적인 대형건설사 현장보다 일당이 쎄고 관리가 소홀한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등 소규모 현장만을 찾는 한국 근로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전공 찾는 인력은 배부른 소리

 

오전 6시부터 오후 5∼6시까지 약 12시간 일을 하고 이들이 받는 돈은 잡부와 철거작업이 8만원, 벽돌 운반(곰빵)은 9만원,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목수와 미장(시멘트), 조적(벽돌쌓기)은 13만원 정도다. 하지만 현장으로 향하는 승합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은 갈수록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거주지를 밝히지 않은 한 50대 일용직근로자는 "원래 목수여서 목수일을 하면 일당 13만원을 받지만 요즘엔 일감이 없어 하루 8만원 받는 잡부로도 뛰고 있다"면서 "그나마 일감을 얻는 날은 운이 좋다. 요즈음은 전공을 찾는 인력은 배부른 사람이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족 등 외국인 근로자들과 경쟁이 붙어 일감을 얻기도 힘들고 어떤 때는 외국인 근로자들 수준에 맞춰 '울며 겨자먹기'로 일당을 더 낮게 받는 경우도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장공인 또 다른 일용직근로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11월에 서울이나 서울 근교에 일감을 골라서 다녔을 정도였는데 올해는 서울 근교는 고사하고 일감을 찾아 남들이 기피하는 지방이라도 가야 할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는 인력소개소를 통해 일감을 얻었는데 요즘에는 건당 1만5000원 정도하는 소개수수료가 아까워 직접 찾아다니기도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절반 이상이 일감 못 얻고 귀가

 

어두운 골목 구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장년의 남성 4명은 인력사무소 팀장의 한마디에 그대로 달려나갔다. 20초 정도였을까. 남성들과 팀장은 대화를 나눈 뒤 2명은 승합차에 몸을 싣고, 나머지 2명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다시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전 5시가 되자 좁은 보도에는 일을 얻으러 나온 일용직 근로자들로 북적댔다. 동시에 이들을 실어나르기 위한 승합차들이 들어오면서 남구로역 앞 도로는 임시주차장으로 변했다.

 

오전 6시를 넘어서면서 이날 이곳에 모인 구직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일감을 얻지 못한 채 허탈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이 연출됐다. 일거리가 줄었다는 현장 근로자들의 얘기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실제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협회 소속 회원사 중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31곳의 수주총액이 해외건설 수주 증가에도 지난해 동기 대비 2.9% 줄었다.

특히 이들 일용직 노동자의 일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내 건설수주는 지난해 동기보다 10.8%(9조8447억원)나 감소했고 2009년에 비해서는 무려 17.6% 줄었다.

 

나아가 오는 2012년의 국내 건설경기는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발주량 감소가 예상되고 민간부문의 발주량도 올해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건설협회의 진단이다.

 

남구로역에서 건설노동자들을 위해 20년째 차를 나눠주는 홍병순 자원봉사자에게도 겨울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는 "안쓰러우니까 이렇게 20년째 나와서 뜨거운 차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는데 겨울에는 일이 확 줄어들어서 사람들이 더 힘들어한다"며 "(전체의)3할 정도만 (일을)나가고 나머지는 거의 일을 못 잡는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 들어 일거리가 없는데 겨울이라 일이 확 줄어 대부분 그냥 허탕치고 간다. 그래서 올겨울에 더 힘들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한만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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