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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란색 물개』 제1화 '한복입은 女子' (제7회) / 김산

등록날짜 [ 2019년02월10일 20시25분 ]

옴니버스 연재소설 『파란색 물개』  / 김산 作

 

제1화 <한복입은 女子> (제7회)

 

백천길은 뒤늦게 속이 쓰렸다. 배를 슬슬 문지르며 햇살이 요란하게 쏟아지고 있는 밖을 바라봤다.

“라면 갖고 되겠습니까?”

“어서 출근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전 출근 안해도 됩니다. 사장님 집도 알아봐야 하고, 집에 가구도 좀 들여놓으려면 제가 있어야 할 겁니다.”

“아! 집요?”

백천길은 그렇지 않아도 오늘 불광동에 가 볼 생각이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 십만 원이면 혼자 살기에는 충분한 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대리가 알아 봐주면 아무래도 낳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반갑게 반문했다.

은행대리는 백천길을 대리고 옛날 국립극장 앞에 있는 한일관으로 데리고 갔다. 백천길은 마침 속이 쓰리던 참이다. 냉면 곱빼기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말끔히 비웠다.

한일관을 나온 은행대리를 콜택시를 타고 명동을 빠져 나갔다. 한남동으로 가서 부동산 소개소 앞에 멈췄다.

백천길의 서울 생활은 은행에서 예금을 유치한 대가로 얻어 준 전세방에서 부터 시작이 됐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은행대리의 추천으로 ‘삐삐’ 라고 부르는 무선호출기 대리점이다. 원래 눈썰미가 있던 탓에 영업을 하는데도 수완이 좋았다.

대리점을 세 곳으로 늘리면서 거래은행의 요청으로 당좌거래도 텄다. 삐삐시대가 가고 핸드폰 시대가 열렸다. 자연스럽게 핸드폰 대리점으로 업종이 바뀌면서 대리점을 다섯 개로 늘렸다.

백천길이 하는 일은 사무실에 앉아서 각 대리점의 영업실적을 체크하는 것이 전부다.

대낮부터 모텔에서 여자와 알몸으로 레슬링을 하고 있어도 돈이 들어 왔다.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있어도 돈이 들어오고, 만화책을 보고 있어도 돈이 들어오고,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고 있어도, 손금을 봐주겠다며 여직원 손을 조몰락거리고 있어도 돈이 들어 왔다.

사업만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농사지으라고 김포에 산 이만 평이 김포신도시 예정지로 편입이 됐다.

삼 억원 주고 산 땅이 스무 배나 올랐다. 지금 당장 팔아도 육십 억원 받기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그뿐만 아니다. 백일만은 백마지기 농사를 져서 모아 놓은 돈으로 여기저기 사 놓은 밭이며 논이 오천 평쯤 된다.

백천길의 이력서는 눈이 부셨다. 나이 스물여덟, 훤칠한 키에 전문대학 졸업, 고령의 아버지, 백억 대 땅을 상속받을 수 있는 남자, 핸드폰 대리점 5개, 강남에 있는 아파트, 고급승용차. 무엇보다 백천길의 부모님이 70대라는 점에서 백천길을 주저 없이 킹카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향기가 없으면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워도 향기가 없는 꽃은 씨앗으로 종자를 번식하지 않고 뿌리로 번식을 하는 이유가 그 점에 있다.

스물여덟 의 남자에 백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은 진한 꽃향기다. 나비들이 사방팔방에서 날아들었다.

남자들이 부러워하는 남자는 돈 많고 여자 많은데 정력까지 강한 자다.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러운 남자는 얼굴까지 잘생긴 남자다. 백천길이 딱 그 남자였다.

백천길이 앉아 있으나 서 있으나 돈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오줌 누고 있는데도 여자한테서 전화가 걸려오고, 여자 배 위에서 리듬체조를 하고 있는데도 전화가 걸려오고, 방금 만난 여자와 낮술 마시고 있는데 새로운 여자가 사무실에서 기다린다는 전화가 왔다.

앞으로 누워도 여자고, 뒤로 자빠져도 여자고, 옆으로 굴러도 여자니까 죽어나는 것은 그 놈이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그 놈도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껄떡거리는 통에 백천길은 바빴다.

오전에는 강남에 사는 여자 만나고, 오후에는 구파발 사는 여대생 만나고, 저녁 먹고는 여직원하고 호텔에서 뒹굴다 보니 직원들이 핸드폰을 파는지, 제 멋대로 가져가는지, 친구들에게 마구 나누어 주는지 파악 할 겨를이 없었다.

기계만 오래 쓰면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남자 물건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망가지게 마련이다. 맛있는 것도 자주 먹으면 질린다. 백천길은 슬슬 여자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또,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자라는 동물이 로열호텔에서 처음으로 품어 봤던 죽순이처럼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도 얼굴과 체형만 다를 뿐이지 생물학적 구조는 다 같다.

백천길은 굳이 피 같은 정력을 들개처럼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수한 종자를 생산하려면 오직 한 여자에게 온 몸의 기를 뽑아 줘야 한다는 판단에 결혼을 했다.

“I'd like to have your baby(당신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

명문대 영문과를 나온 여자가 백천길에게 접근했다.

“오케이, 땡큐바리.”

백천길은 그녀의 집에 찢어지도록 가난한 것이 좋았다. 어차피 처갓집 신세를 질 필요는 없다. 가난한 집 여자니까 순종 할 것이라고 믿었다. 처갓집에 적당히 모이만 뿌려주면 마음대로 휘어잡고 살 것이라는 생각에 결혼을 했다.

“동생이 놀고 있어요. 핸드폰 가게 하나 내 주면 안될까요?”

신혼여행을 갔다가 와서 백천길이 양발을 벗기도 전에 달콤하게 아내가 속삭였다.

“좋지. 처남은 믿을 수 있잖아.”

백천길은 형제가 없어서 외롭게 자랐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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