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구 칼럼]
마음밭[心田]
내 서재의 창문에 2011년 첫날이 밝았다. 오늘 아침에는 지하방에 가서 『日本の名隨筆 13 心』이라는 책을 찾아보았다. 사쿠힝샤(作品社)에서 1984년에 발행한 수필집이다. ‘마음 심(心)’ 자는 일본어로 ‘고고로’라고 읽는다.
센다이 주재 한국총영사관에서 공관장으로 근무할 때인 1988년 봄에 샀으니까, 햇수로 23년 만에 읽는다. 그 책에는 31편의 명수필이 실려 있는데, 여류 소설가인 고노 다에코(河野多惠子) 의 「마음 씀씀이(心づかい)」가 눈길을 끈다. 그 글의 요지는 이렇다.
도쿄에 사는 나는 조카에게 줄 우표용 핀셋을 사서 고향에 가기 위해, 긴자(銀座)에 있는 어느 백화점을 찾아갔다. 조카는 오사카에서 소학교 3학년에 다닌다.
문방구 매장으로 가서 안내 양에게 우표용 핀셋을 파는 장소를 물었다. 컴퍼스 파는 여자 직원한테 가라고 하였다. 그리 갔더니 여자 점윈은 저쪽에 있는 남자 점원이 판다고 하였다. 그 남자에게 가자 여자 점원에게 가라고 하였고 여자 점원은 남자 점원이 판다는 것이다.
나는 남자 점원한테 여자 점원하고 둘이 우표용 핀셋을 찾아 달라고 하였다. 여자 점원이 우표용 핀셋을 가지고 왔다. 대금을 지불했더니, “고맙습니다.” 하고는 가버렸다. 여자 점원도 남자 점원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후츄(府中) 경마장에 갔다. 레이스 두 개가 끝나자 목이 말라서 매점으로 갔다. 친구들의 몫도 사려고 여자 점원에게 냉커피 넉 잔을 주문하였다.
종이컵에 냉커피를 따라 주었다. 종이컵들이 커서 들기가 힘들었다. 그 점원은 빈 상자에 넣어서 들도록 해 주었다.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생각해 보니, 경마장에서는 레이스보다 그 여자 점원의 상냥한 마음가짐을 본 것이 더 기뻤다. 정말로 종이컵에 든 커피를 맛있게 마셨다.
고노 다에코는 글의 소재를 일상의 체험에서 주웠다. 주제가 선명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사람들이 흘리고 간 인생의 낙수를 소재로 삼았다. 수필은 생활이란 말이 실감난다.
고향 동네에서 시내에 있는 고등하교에 다니던 어느 해 겨울이었다. 하루는 국어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자 편지지 사용법이며 인사말을 시작하는 법이며 편지지 쓰는 요령을 가르쳐 주시었다. 그러고는 집에 가서 일선 장병 위문편지를 써 오라고 하시었다.
그 선생님은 “편지는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장병에게 보내는 것이니 정성을 들여 써야 한다. 누군가 너희들에게 군인들이 일선에서 피를 흘릴 때 무었을 했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셨다.
어느 날 나는 입대하는 급우들을 환송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대학에 가지 못한 급우 중에서 징병 적령자는 군대에 가게 되었다. 우리 학우들이 플랫폼에 서서 손을 흔들자 객차 안에서 “돈 있는 너희들은 뒤따라오너라!” 하는 고함이 들려 왔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어느 해 가을, 서울 영등포 역전에 있는 어떤 한식집에서 고향 친구들하고 점심을 하게 되었다. 모두가 병역의 의무를 마친 노인들이었다. 육이오 전쟁 때 일선에서 싸운 용사도 있었다.
마침 그때 국회 의원들이 국회에서 국무총리 후보자의 병역 면제 사유를 따지고 있었기에, 친구들이 공무원은 병역의 의무를 다한 사람이 하도록 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공직자는 마음가짐이 곧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진로 소주를 마시며 이런 의견을 개진하였다. 국회의원들이 국가는 병역 미필자의 공무원직 취임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을 헌법에 신설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해야 할 때라고.
그 후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봄날, 나는 아내와 함께 서울을 떠나 시애틀 근교에 있는 뷰리엔의 밀러스 크리크 마을로 이민을 왔다. 늘그막에 따뜻한 날씨를 즐기며, 호반 숲길을 거닐며, 아들딸과 손자도 만나며 글을 쓰며 지낸다.
내 서재의 창문에 해가 눈부시게 비쳤다. 까마귀가 울며 창밖을 지나 동쪽 앰바움 불바드를 향해 날아간다. 그 낯익은 까마귀 울음은 고향 친구들을 잊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 이경구
前 외교관.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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