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자 칼럼]
만홀히 여김에 대한 반성문
알 것 같다. 힘없는 풀잎들이 왜 독을 품는지를. 왜 순식간에 몸을 바꾸어 복수의 화신으로 돌변하는지를. 가볍게 여김을 당한 것이 원인이다. 지금 나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만홀히 여김으로 인해 뜨거운 여름날, 풀 몸살을 톡톡히 앓고 있다. 스칠까 말까 했을 뿐인데 열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일주일 째 사경을 헤매고 있다. 상대방의 목숨을 볼모로 삼은 것이 문제였으리라.
포이즌 아이비, 독풀을 발견한 것은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정원에 햇살이 유독 눈 부신 날이었다. 나는 꽃밭을 들여다보다가 세 개의 잎을 가진 삼엽초를 발견했다. 데이지 꽃잎 그늘에 숨어 쥐 죽은 듯 숨어 있었다. 독풀을 잘 못 만져서 피부병을 앓아 본 터라 거세를 시작하기로 했다. 뿌리는 생각보다 넓게 번져 있었다. 화단에 물을 주어 땅을 축축이 시는 일부터 시작했다. 땅이 충분히 젖었을 즈음 꽃 뒤에 숨어 있는 독풀의 줄기를 조심스레 말아 올렸다. 곁뿌리들이 줄지어 뽑혀 나왔다. 두두두두 딸려 나오는 줄기를 보니 ‘완전 제거’ 욕망이 스멀스멀 불타올랐다. 독풀을 제거하는데 정신을 빼앗겨 잎이 팔뚝을 살짝 스친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고, 작은 것들이 그토록 무서운 맹독을 지닌 줄 알았더라면 그리 겁 없이 씨를 말리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까짓 것들이, 이빨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그토록 세게 나의 팔뚝을 물고 갈 줄 누가 알았으랴? 작게 본 것이 죄다. ‘풀떼기쯤이야’ 얕본 것이 문제다.
맹독의 풀들이 혈서를 남기고 갔다는 것을 안 것은 하루가 지난 다음 날이었다. 아침이 되자 팔뚝 안 쪽에 붉은 반점이 생기더니 하나 둘 작은 물집들이 불거져 올라왔다. 머루 알같이 작은 뾰루지들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더니 집과 집을 통합 내지는 분리해 가며 몸을 키워갔다. 급기야는 동전 크기만큼 큰 물집으로 변해 뜨겁게 부풀어 올랐다.
'이것쯤이야' 했는데 소홀히 여긴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얼핏 삼엽초 독초 잎이 장갑 낀 손을 빗나가 팔뚝에 살짝 스친 기억이 스쳐 갔다. 진물이 터지면서 번져갔다. 진물이 터지면 터진 자리에 다시 진물이 차올랐다. 피부가 딱딱하게 변해 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콧방귀 끼듯 벌레에게 물리면 바르는 벌레 약을 바르는 둥 마는 둥 했으니 인간이여 질긴 인간이여, 하나의 생명을 내 식대로 송두리째 난도질해 놓고도 곧 괜찮아지겠지 했으니, 우매함을 어디에 호소할까? 이틀이 지나자 반대편 팔뚝에도 붉은 반점이 번지기 시작했다. 풀을 뽑는 데 쓰지 않았던 왼쪽 팔이었는데도 나는 밤새 악몽 같은 간지럼 증에 시달렸다. 옆구리에도 다리에도 하나둘씩 분노 같은 물집이 솟구쳤다. 긁을수록 진물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풀의 혈서를 고스란히 받아쓰는 꼴이었다.
그런데 작고 가시 하나 없는 풀떼기가, 꽃 하나 없고 매끈하기만 했던 초록 이파리가, 무슨 이유로 독을 품고 사는 것일까? 자기방어였으리라. 꽃 한 번 피우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자신들의 인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리라는 것을 알기에, 누군가는 솎아 내 불에 던져 버리리라는 것을 알기에 제 몸에 무기를 장착하고 산 것이었으리라. 생각해 보라. 풀은 인간에게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것을 두려워해 먼저 꺾어 버린 것이다. 독성 식물의 존재 자체가 인간들에게는 시비를 거는 일일 것이다.
독풀은 먼저 물지 않는다. 누군가 먼저 자신들의 목을 비틀었기 때문에 소리 질렀을 뿐이다. 이곳은 네가 살 땅이 아니라고 내치려 했기 때문에 벼랑에 내 몰린 짐승처럼 물어 버린 것이다. 물지 않으면 물린다는 것을 몸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급기야 시한폭탄을 등에 지고 곁방살이를 하고 있었으니 만지는 순간 터질 수밖에, 저도 죽고 꺾은 이도 죽일 수밖에.
알아 모셔야 했다. 무게 있고 사려 깊게 처신했어야 했다. 한 생명을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씨를 말리려 했다. 철저히 무장하여 시간을 두고 없앴어야 했다. 만홀히 여김을 당해 상처받은 것들은 두려울 것이 없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며칠 후 나는 꽃밭이 궁금해 졌다. 팔뚝에 붕대를 맨 채 꽃밭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영락없이 패잔병이었다. 제거하지 못한 삼엽초가 남아 있을까 두려웠다. 제압을 당한 것인지 독초들이 약속을 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인지 정원은 고요했다. 소리 없이 베여 죽어 간 것들은 흔적조차 없어 보였다. 일단은 승리라고 믿고 싶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데 아뿔싸, 여름내 보랏빛 꽃들을 게워내던 팬지 꽃 무덤 틈새로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독풀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삼엽초는 꽃그늘 속에 낮게 몸을 낮춘 채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눈빛에서 살기가 질기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 죽지 않았다.
이민법이 날로 까다로워지는 요즈음, 갑이 을을 주눅 들게 한다. 미국 국경을 넘은 밀입국자들은 추방당하고 미성년자 자식들은 강제로 격리 수용되어 생이별 당한다.
함부로 솎아내지 마라. 민초는 죽지 않는다.
□ 김은자
시인. 미주시낭송문화예술원 원장. 뉴욕 K-RADIO 문학프로그램 '시쿵' 진행
http://seoultoday.kr/homepage.php?minihome_id=k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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