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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가 배운 '절차탁마' / 최두환

등록날짜 [ 2019년02월22일 11시12분 ]

[최두환 칼럼]

내가 배운 '절차탁마' 

 

누가 이런 말을 했는가?
“너 자신을 알라!”


누구나 그러겠지만, 나는 나를 알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런데 나 자신을 참으로 알 수 없다. 아니 참으로 모르고 살아왔다고 하는 말이 더 정확한 것 같다. 그 동안 내가 배운 글 가운데, 우리들이 흔히 쓰는 말이지만,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것이 있다. 누구든지 이 말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이렇게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학업에 열중하는 말을 비유”이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위의 설명은 <고사성어 사전>에 풀이된 “절차탁마”이다. 나는 그렇게 외웠다.


그래서 어느 시기엔가 좀더 명확히 알자는 생각에서 <국어사전>을 보았다. 역시 “학문과 덕행의 닦음의 비유”라고 되어 있었다. 결국 “절차탁마”의 설명을 “학업/학문/덕행을 깊이 있게 수련하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인가? 그런 정도라면 “인품” 내지는 “인격” 도야(陶冶)라는 말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유한답시고 어려운 “切磋琢磨”를 썼다. 혹여 어려운 말을 쓰면 유식(有識)해보이니까?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은 유식한 것이 아니라, 더 무식한 것이다. 남들이 명확하게 알아듣게 말하고 설명해주는 것이야 말로 정말로 유식한 것이다.


“切磋琢磨”라는 말이 너무 어렵고도 길어서 줄여서 “절마(切磨)라고도 하고, ”탁마(琢磨)“라고도 한다. 보통 긴 낱말을 줄일 때에는 앞자와 뒷자의 첫글을 따와서 합성하여 쓰는데, 그러면 적어도 ”절탁(切琢)“이라고 해야 할텐데, 그렇지 않고, 좀 다르게 쓰고 있다.


그렇다면 그 “切磋琢磨”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가?
《옥편》을 찾아보았다. “뼈와 상아를 칼로 다듬고 줄로 쓰며, 옥과 돌을 망치로 쪼고 사석(沙石)으로 갊. 학문과 덕행을 힘써 닦음, 벗끼리 서로 격려함을 비유”라고 하였다. 이 《옥편》에서는 구분이 잘 가지 않은 말을 했으나, 무언가 다시 확인해야 하는 말이 들어있다.

切(절): 뼈를 잘라내거나, 깎아내다.
磋(차): 상아(象牙)를 갈다.=瑳.
琢(탁): 옥(玉)을 갈다.
磨(마): 돌을 갈다.

이렇게 찾아 밝혀보니, “切磋琢磨”라는 글자가 각각으로 그 용도가 서로 달랐다. 무언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이며,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말은 그 행위야 어떤 것이든 좀더 흥을 돋구거나, 의미를 강조했던 유래는 무엇일까?
그것은《시경(詩經)》<위풍(衛風)>에 나온다.

瞻彼淇奧(첨피기오) 보라! 저 기수의 물굽이
綠竹猗猗(록죽의의) 마디풀이 우거졌네.
有匪君子(유비군자) 어여쁘신 우리 님은
如切如磋(여절여차) 뼈와 상아를 다듬은 듯
如琢如磨(여탁여마) 구슬과 돌을 갈고 간 듯
...

여기서 “여절여차(如切如磋) 여탁여마(如琢如磨)”를 줄여서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의 뿌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명확하게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뿌리를 알았다. 결국 《詩經》을 제대로 읽어보았더라면 처음부터 그 의미와 유래까지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런데 여기서 이 《시경》을 읽다보니 또 하나의 의문이 난다. 우리는 “竹”라면 “대(bamboo)”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위에 번역해놓은 것에는 “대”가 아니라, “마디풀”이라고 했다. 물론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은 “대"라고 풀이하여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 중국의 반부준(潘富俊)의《詩經植物圖鑑》(上海書店出版社, 2003)에 보면, 전혀 다르게 "竹: 今名 萹蓄, 竹葉草, 扁竹"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냥 "대"가 아니라, 분명 "마디풀"인 것이다. 이 “마디풀”은 “일년생 초본(一年生草本)”이며, 중국의 각 지방에서 습지에서는 어디에서나 생장한다.《중국어사전》과《한어대사전》에서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해석이다.


“절마”니, “탁마”니 줄여서 쓰든, “절차탁마”를 그대로 쓰든, 학업, 학문, 덕행에 대한 노력의 비유의 뜻으로만 알아들었을 뿐, 그 본뜻을 알기에는《국어사전》으로서는 전혀 불가능하다. 아무래도《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들여다보아야 하겠지만, 일단《천자문》을 처음부터라도 교과서로서 배워야 할 판이다. 부분을 알아서 전체를 파악하는 데는 너무도 한계에 부딪친다. 그렇다고 해서 한자/한문을 강조하여 배워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훈민정음이라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용비어천가>에 풀이해놓은 한자 발음법의 반절(反切)은 우리가 모두 놓치고 있다. 그 역사적 배경을 적어놓은 것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을 많이도 써먹으면서 옛것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나 아닌지, 그런 모순 속에서 자기 자신은 스스로 모순으로 살고 있지는 아닌지, 나만은 오직 합리적으로만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진실로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학문을 한답시고, 학교에서 많은 글을 배웠지만, 정작 그 뿌리를 알지 못하고 외우기만 바쁘다 보니, 나는 이제 와서야 그 원전을 하나씩 넘겨가면서 공부하고 있다.


그 동안 대학교까지 정규교육과정 16년 동안은, 거기다가 석사/박사과정까지 보태면 20년은 넘는다. 이 기나긴 시간들이 어찌 보면 허송세월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이 느껴진다. 참으로 아까운 세월들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국가의 경쟁력을 후회로써 마감해야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최두환  

경영학박사. 동양사 문학박사
http://seoultoday.kr/homepage.php?minihome_id=c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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