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환 칼럼]
이런 '국어사전'은 없는 것만도 못하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한 가지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은 "사덕(四德)은 드러낼수록 좋고, 사독(肆毒: 독한 성미를 함부로 부림)은 감출수록 좋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여기서 “사독”이란 말에 잠시 생각을 해보자.
우리의 삶에서 표준을 삼는 것이 많지만, 그 가운데 <사전>인데, 그 사전에 설명된 글이 사실과 다른 잘못된, 틀린 것이라면 이것은 곧바로 글로써 독한 성미를 모든 독자들에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해독(害毒)은 없는 것만도 못하다.
내친김에 소리가 비슷한 "사독(四瀆)"을 보자. 이 또한 "肆毒"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국어사전>어디에서나 그것을 나라의 운명에 관계있다 하여 "나라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던 네 방위의 강(江). 동독(東瀆)인 낙동강, 남독(南瀆)인 한강, 서독(西瀆)인 대동강, 북독(北瀆)인 용흥강(龍興江)을 이른다."고 설명되어있다.
이 말에서 하나씩 그 방위와 강이름과가 서로 맞게 지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상식이지만, 방위나, 방향은 언제나 그 중심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동남서북의 독(瀆: 강)이란 것은 그 중심에서부터 있어야 할 것이며, 한반도로 보면, 그 중심지는 어디까지나 서울(한성/한양)일 수밖에 없으며, 그곳을 흐르는 한강이니 중독(中瀆)이라 해야 하겠지만, 지리적으로 서쪽에 있으니, 서독(西瀆)이라야 맞는다.
그리고 그 서울에서부터 동쪽에 있는 강이 동독(東瀆)이라면 강원도 강릉 어디를 흐르는 강이라야 마땅할 것이다.
또 남쪽에 있는 강 남독(南瀆)이라면 아마도 구례/하동을 지나는 섬진강이라야 마땅하지 않을까?
또 북쪽의 강 북독(北瀆)이라면 두만강이거나, 그 너머 토문강(土門江)이라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데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모르쇠로 지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현상이지만, 전혀 방위가 맞지 않는 동남서북으로 그 상대적 방위를 고려하지 않는 역사 해석은 지식함양에 조금도 도움되지 않는다. 아침에 진실 하나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목숨이 다하여 죽을 때까지도 동남서북 방위하나 깨우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까지의 식민지 사관에 의한 지식개념으로써 낙동강(洛東江)을 동쪽에 있는 강이라고 한다면, 그 중심지는 마산인가? 진주인가? 이 낙동강은 한반도의 동남쪽이고, 서울에서도 동남쪽이다. 그러니 결코 동독(東瀆)이란 명칭을 붙일 수 없다.
그리고 대동강(大同江)을 서쪽에 있는 강이라면, 그 중심지는 어디겠는가? 남쪽에 있다고 설명된 한강(漢江)으로 보아도 북쪽에 있게 되니, 그렇게 붙이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평양(平壤)을 서경(西京)이라고 불러주니, 물론 서쪽도 아니지만, 서독(西瀆)으로 불러주어야 하는 것인가? 한반도로써는 결코 그 설명이 잘못되었다. 그런 방위에 맞도록 진실을 찾아야 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당연히 본디 광활했던 조선을 한반도에 짜깁기를 해놓아 옷이 맞지 않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세종실록》76권 19년 3월 13일(계묘)에 보면, "여러 도의 악(嶽)·해(海)·독(瀆)·산천은 묘를 세우거나, 혹은 단을 설치하고, 혹은 단과 묘를 아울러 설치하여, 사우(祠宇)의 간수가 혹은 많고 혹은 적고 합니다. 지금 예전 제도를 상고하면, 당나라 개원례(開元禮)에 오악(五嶽) 사독(四瀆)을 제사하는 데에 모두 단이 있고, 송나라 개보 5년에 조서를 내려 악·독과 동해·남해의 묘에 각각 본현의 현령으로 묘령(廟令)을 겸하게 하였고, 송나라 진종은 전천(澶川)에 하독묘(河瀆廟)를 두게 하였습니다.[諸道嶽、海、瀆、山川, 或立廟、或設壇、或壇廟, 竝置祠宇, 間閣或多或少。今考古制, 唐《開元禮》祭五嶽四瀆, 皆有壇。 宋開寶五年, 詔: 嶽瀆幷東海南海廟, 各以本縣令兼廟令。 宋眞宗令澶川置河瀆廟。]"고 했다.
여기서 당(唐)나라니, 송(宋)나라의 사례를 들었던 것이 분명 조선의 터전이었던 것임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들 또한 조선의 제후국이었으니까. 그리고 <국어사전>에서 설명된 것처럼 “네 방위”의 언급은 전혀 없다. 오악사독(五嶽四瀆)의 숫자가 들어 있으니, 지레짐작으로,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온 백성의 머리를 거짓으로 각인시켜 지식을 가치없게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이런 <사전>이야 말로 없애야할, 새로 만들어야 할 첫 번째 대상이다.
문제는 조선에서 사독(四瀆)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모든 <사전>마다 그렇게 설명된 것과 당나라, 송나라에서 제사지냈던 사독과는 어떤 관계이겠는가? 원래 사독(四瀆)이란 "江河淮濟"(강하회제), 즉 장강(長江), 황하(黃河), 남쪽과 북쪽의 그 어름에 있는 회하(淮河: 淮水)와 제하(濟河: 濟水)"를 가리킨다.
이런 개념에서《세종실록》에 언급된 “악(嶽)·해(海)·독(瀆)·산천의 단묘(壇廟)와 신패(神牌)의 제도를 상정[詳定嶽、海、瀆、山川壇廟及神牌制度]”이라는 말을 되생각해보고, 다시 풀어야 한다.
지식은 학문의 열매이다. 학문이 바로 서지 않으면 지식은 지식(彽瘜: 목적 없이 왔다갔다 하여 굳은 살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학문은 허황하고도 황당한 것 같은 문제를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상식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학문은 상식이 통하는 지식을 쌓아가야 할 것이다. 문학도 그런 학문의 바탕에서 이루어진 값진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최두환
경영학박사. 동양사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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