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 칼럼]
나라 잃은 비극
이제 한 두 차례라도 외국여행을 안 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라가 그 만큼 잘살게 됐기 때문이다. 외국여행을 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여행에 필요한 돈과 여권이 아닐 수 없다.
여행사를 이용한 패키지여행을 하던, 친한 친구끼리 배낭여행을 하던, 오붓한 가족여행을 하던, 어느 정도의 돈과 여권을 소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여권은 필수 지참물이 아닐 수 없다.
돈은 부족하면 먹을 것을 덜 먹고, 관광구경을 덜 하고, 기념품이나 물건을 덜 사면되지만-고생은 돼도 있는 형편대로 쓰면 되지만-여권이 없으면 외국정부로부터 신분과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고, 여기저기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조차 없다.
따라서 외국을 여행할 때 여권을 소중히 간수해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해외여행 경험자라면 여권을 분실하는 일이 없도록 수시로 단속하고 챙겼던 일을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여권이 없으면 우선 자국에서 외국으로의 출국을 할 수가 없고, 출국을 했더라도 다른 나라에 입국을 할 수가 없다. 이는 누구나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여권이 출·입국 절차 밟을 때나 필요한 것으로 오해하고 여행이 끝난 다음에는 아무렇게나 대접하면서 여권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잊고 지내는 사람은 없는지 모르겠다. 만약이지만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여권을 소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권은 세계 어디를 가든 그를 보호해주는 조국이 있음을 알려주는 문서이고, 증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여행을 할 때마다 여권의 첫 장을 열면 나오는 우리나라가 외국정부에 당부하는 글을 읽고 내 나라 대한민국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곤 한다.
잠시나마 나라 사랑의 계기로도 삼는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읽어봤겠지만, 새삼스레 그 내용을 여기에 옮겨본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런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내가 삶을 의지할 독립된 떳떳한 나라가 있고, 다른 나라에 나가더라도 편의를 제공받고 신변을 보호받을 수 있음은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이 겪은 참상을 책이나 기록, 또는 영화를 통해서라도 잘 알고 있다. 독일의 나치정권에 의해 600만 명이 넘는 유태인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또 수많은 유태인들이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빼앗기고, 탄압을 받았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는 12∽13살 어린 나이로 공포 속에 숨어 살면서도 일기로 기록을 남겼지만, 끝내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체포돼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에 수감 중 15세의 어린 나이로 굶어 죽었다고 한다. 그녀는 수 천 명 단위로 매장된 어느 한 무덤에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묻혔다는데 어느 곳에 묻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유태인들이 이렇게 처참한 학대를 받은 건 그 당시 그들을 보호해줄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0년 동안이나 나라를 잃고 세계도처에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한때 나라를 잃었던 쓰라린 역사를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엊그제는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잃었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온 국민들이 의연히 떨쳐 일어났던 3.1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나라 잃은 설움이 얼마나 크고, 나라가 없을 때 얼마나 많은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마음에 새기고 잊지 않아야겠다. 2000년 동안 나라를 잃었던 유태인들의 슬픔과 비극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다시는 나라를 잃는 일이 없도록 유념해야하겠다.
애국가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라를 사랑해야 하겠다. 나라 지키는 일은 모든 국민의 의무이고 책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세계 각 국을 당당하게 어깨 펴고 돌아다니기 위해서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2019.03.05)
□ 나창호
전 부여군 부군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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