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택만 칼럼]
"반도체 너마저 위기"
우리 경제가 참혹한 빙하기고 접어들고 있다. 조선·철강·반도체 등 주력산업이 구조적 한계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데다,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수출의 20%를 차지하면서 한국 경제의 유일한 성장 엔진 역할을 하는 반도체 산업이 미국 일본 중국 등에 의해서 협공을 당하고 있다.
초호황이 끝나고 침체 국면으로 접어드는 상황에 미국과 중국, 일본이 각각 '한국 반도체 패권 견제'에 나서는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무역 협상 과정에서 중국 측이 향후 6년간 2000억달러(약 225조원)어치의 반도체를 수입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규모의 3배를 넘는다. 중국의 반도체 수입은 2017년 2601억 달러였고 작년엔 2990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의 절반 이상이다. 중국이 인위적으로 수입 물량을 미국 기업에 배정하면, 한국 반도체 수출은 엄청나게 위축될 게 뻔하다.
최근 한·일 관계 악화 이후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에서는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물질 중 하나인 불화수소(불산 플루오린화수소)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용 불화수소 시장은 일본 업체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 쓴다. 수출중단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치명타를 줄것이다
기업의 해외 탈출(엑소더스)
위기의 파고는 곳곳에서 밀려오고 있다. 지난해 우리 제조업의 해외 직접투자가 역대 최대로 폭증한 반면 국내 생산능력은 사상 처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부품과 자동차·화학제품 등 주력 제조업이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생산 기반은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2월 10일 발표한 한국수출입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년 전 보다 1.1% 감소해 1971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1~9월 제조업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금액은 124억5,100만 달러에 달해 연간 기준으로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1980년 이후 역대 최대치였다. 2010~2017년 연간 제조업 해외 직접투자액 평균 84억7,100만 달러의 1.5배 수준이다.
해외 직접투자는 경영을 목적으로 해외로 나간 금액을, 제조업 생산능력은 기업이 정상적인 조업환경일 때 국내에서 최대로 생산할 수 있는 양을 뜻한다. 2000년대 이후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제조업의 해외 직접투자도 매년 꾸준히 발생했지만 이제까지 국내 생산능력이 준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는 9개월 만에 제조업의 해외 투자가 2010년대 연간 평균 증가율(7.3%)의 8배 수준으로 급증한 데다 사상 처음으로 국내 생산능력까지 줄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생산능력 감소는 국내 설비 증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으로 국내 공장을 늘리거나 새로 짓지 않고 해외 공장을 늘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제조업의 붕괴현상은 미국 중국 일본의 협공과 추월에 의해서 가속화되고 있다.
간판격인 대기업의 붕괴 현상
지난해 우리나라 제조업은 생산ㆍ투자ㆍ고용이 동반 위축되면서 성장 동력의 역할을 상실했다. 특히 생산능력 등 일부 지표는 1970년대 경제개발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먼저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이 3년째 감소하여 멕시코에도 뒤진 7위로 밀려났다. 세계 1위였던 LCD TV 시장에서 중국의 파격적인 저가 공세에 밀려 2위로 추락했다. 한국의 대표 브랜드인 반도체를 포함하여 전자제품과 자동차·화학제품 등 주력 제조업 제품들도 국내 생산능력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국자동차산업협회가 2019년 2월 20일 발표한 ‘2018년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대비 2.1% 줄어든 402만9,000대를 기록했다. 세계 자동차 10대 생산국 중 유일하게 3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한국보다 뒤쳐졌던 멕시코가 같은 기간 411만대를 기록, 전년보다 1.0% 증가해 한국을 따돌렸다. 한국자동차 산업위기는 대립적 노사관계와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 고착화로 생산경쟁력 상실에 기인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또 다른 간판격인 LCD(액정 디스플레이) TV도 중국에 처음 추월을 당해 1위를 빼앗겼다. LCD 패널에 이어 LCD TV까지 중국에 추월을 허용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LCD TV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파괴 때문이다.
한국 제조업은 반도체 수출 비상과 함께 자동차, 컴퓨터 등에 이어 세계 1위였던 LCD 관련 제품마저 추락하면서 위험수위를 넘긴 상황이다. 최후의 보루인 반도체 분야마저 흔들리고 있다.
□ 최택만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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