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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못 생겨도 맛은 좋아 / 최원현

등록날짜 [ 2019년03월16일 15시56분 ]

[최원현 칼럼]

못 생겨도 맛은 좋아

 


지난 가을이었다. 비가 온 뒤끝이어서인지 땅이 너무 질었다. 하지만 남들은 다 캤다며 재촉하시는 구순의 장인어른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아내와 나는 고구마 덩굴을 걷어내고 떡이 된 땅에서 삽으로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그런데 크기가 호박만한 고구마가 딸려 나오지 않는가. 하지만 크다고 좋아하긴 일렀다. 큰 만큼 생긴 모양이 어찌나 흉측스러운지 마치 괴물 같았다. 커다란 진흙덩이를 아무렇게나 뭉쳐 주물러놓은 것 같은 모양에 아무리 봐도 고구마 같지 않은 고구마를 캐어들고 망연자실 했다. 크기는 또 왜 이렇게나 크담. 아내와 나 그리고 처제 내외가 캐낸 고구마들은 하나같이 크고 못생긴 것들이다. 


토질 때문일까, 종자가 이런 걸까. 그러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얼마나 맛있고 잘 생긴 고구마를 캤던가. 한데 금년 들어 왜 이런 돌연변이성 고구마인가. 진흙 범벅이 된 고구마를 수돗가에 쏟아놓고 일일이 물로 씻어내는 일도 고역이었다. 


사실 몇 년째 고구마를 심어오면서 내년에는 절대로 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었지만 꼭 때가 되면 장인어른께서 고구마 순을 사다놓고 심을 밭까지 정리를 해놓으시곤 고구마 심으러 오라고 전화를 하시곤 했다. 


값으로 따지면 정말 비싼 고구마다. 서울에서 한 상자만 사면 실컷 먹을 텐데 노동력은 차치하고라도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 차량의 기름 값만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거기다 일 한답시고 거나하게 먹고 또 모처럼 왔으니 두 노인네 용돈 드리고 냉장고 열어보고 이것저것 채워드리고 오면 정말 황금 값 고구마가 된다. 하지만 노인네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으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또 그리해야 자식들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실 것 아닌가. 해서 못이기는 척 내려가곤 한다.


사실 처가 쪽 6남매에 얼마큼 나누다보면 정작 우리 몫은 별로 남지 않는다. 그래도 지난해엔 몇 집에 조금씩 나눠줄 수도 있었는데 이번 것은 주었다가는 숫제 모욕이 될 것 같다. 결코 사람이 먹을 음식 같아 보이지 때문이다.


못 생긴 것 몇 개를 씻어 솥에 쪄봤다. 어떤 것은 심이 박힌 것도 있지만 워낙 커서 칼로 잘라 찐 한 조각을 먹어보니 맛은 기가 막히다. 막 쪄서일 수도 있겠지만 팍팍하지도 너무 물렁거리지도 않게 적당히 잘 쪄진 고구마는 참으로 맛이 좋았다. 문득 외모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요즘 사람들과 나도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며 고구마에 심히 미안해 졌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고구마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더구나 금년엔 고구마를 심으러 내려갔다가 비닐까지 씌우고 고구마 순을 꽂으려는데 비가 쏟아져 작업을 중단해야 했고 우린 시간을 더 낼 수가 없어 심는 작업은 구순이 넘으신 장인어른께서 며칠간 아침마다 하셨다. 그러니 이번 것은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셈인데 그러고도 수확을 하겠다고 와서 잘 생겼느니 못 생겼느니 하고 있으니 참 염치도 없다. 


하니 금년 고구마 농사는 장인어른과 하늘이 지은 것인데 감히 구시렁대고 있으니 어르신 귀가 어두워지신 게 그나마 다행인지 모르겠다.


요즘 세상은 그저 외모지상주의다. 죄를 지었어도 예쁘다고 용서해 주라는 참으로 별난 세상에서 산다. 
얼마 전 교회의 주일 설교 중에 금방 지나간 사람이 또 지나가는데 그 사이 옷이 바뀌었더란다.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 얼굴을 하도 많이 다듬고 고치다 보니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아 보인다. 그렇다고 마음 씀이나 생각까지 같을 순 없겠지만 자기 개성이 무시되고 일반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다 보니 가만히 보면 모두가 비슷비슷한 사람이다.


고구마가 맛만 좋으면 되었지 예쁘면 어떻고 그렇지 못하면 어떠랴만 사람의 눈은 무엇이건 내면의 가치나 맛보다도 외형의 모양을 먼저 따진다. 


그 영향은 실버세대에까지도 미치는 것 같다. 늙으면 늙음에서 오는 품위와 격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건 아예 생각지도 않고 숫자적이고 외형적으로 늙었다는 것만으로 힘없는 사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필요 없는 사람으로 소외 시킨다. 속된 말로 ‘저희는 안 늙을 건가’이지만 현실은 그저 자기네들만 주인공이고 대단한 존재요 흘러가고 지나간 세대는 아무것도 아닌 양 생각한다.


세상은 결코 현재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과거를 바탕으로 하는 현재일 때 좋은 미래도 온다. 우리 밭의 고구마처럼 못 생겼어도 맛이 좋은 것이 세상엔 많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보다도 내면 깊이서 우러나오는 향기로움과 맛깔스러움을 볼 줄 알고 사랑할 수 있는 지혜로움이 아쉽다.


고구마를 다시 한 입 입에 넣고 먹다보니 지난해의 잘 생긴 고구마 맛보다도 한결 좋은 것 같다. ‘못 생겨도 나는 좋아’하는 노랫말도 있지만 오늘 나는‘못 생겨도 맛은 좋아’이다. 고구마야 미안하다. 내가 너의 참 가치를 몰라봤고 너의 진실을 무시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못 생긴 것이라기 보단 세상에서 가장 개성 있게 생긴 고구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만으로도 작품일 것 같다. 도 크다고 투정부릴 일도 아니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찌고 보니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모르겠다. 


가장 특이하게 생긴 것 하나를 골라 가지고 와서 수반에 올려놓았었는데 계절도 없이 줄기가 왕성하다. ‘넌 굉장히 개성적인 놈이야.’ 세상의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 보기 나름인 것 같다. 그 진리를 요즘 젊은이들도 깨달았음 싶다.

 

 

□ 최원현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http://seoultoday.kr/homepage.php?minihome_id=c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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