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 칼럼]
안경과 미세먼지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네팔사람들은 우리나라 도시주변의 산들을 보고 구릉이라고 한다는 소리를 들은 일이 있다. 해발 8000m가 넘는 고봉만 8개(히말라야 산맥 전체14개)나 있는 네팔 히말라야 산맥을 보고, 자라고, 생활했기에 그런 말이 자연스레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됐다. 해발 5000m 높이에 트레킹 코스의 고갯길 있다니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환경이 사람을 지배함을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몽골이나 티베트의 유목민들은 시력이 유달리 좋다고 한다. 4.0∽5.0은 기본이고, 안경을 쓴 사람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시력이 독수리보다도 좋다고 한다. 이들이 이런 좋은 시력을 갖게 된 것은 첫째는 드넓은 평원과 맑은 공기 때문이고, 둘째는 생계수단의 전부인 가축을 보호하려면 지평선 끝에 나타나는 적이나 맹수를 한시라도 빨리 알아채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 좋은 시력을 가진 몽골이나 티베트의 유목민을 우리나라에 데려오면 어떨까? 시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쇠퇴하고 말까? 궁금증이 인다. 다행이 시력이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파트의 베란다에 서서 멀리 보이는 산을 보며 잔솔밭에 꿩이 긴다느니, 큰 나뭇가지에 작은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다느니 할지도 모를 일이다.
바닷가에서는 우리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수평선 너머를 가리키면서 저 멀리 배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좋은 시력도 우리나라에서는 쇠퇴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그들의 생활환경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들이 좋아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도 맑은 공기도 없다. 눈길마다 산이고, 공기는 공해나 미세먼지로 찌들어 있다. 그들이 아무리 선천적으로 좋은 시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드라도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후천적인 시력의 쇠퇴를 막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들도 환경의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눈은 보배가 아닐 수 없다. 눈이 없다거나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불행하거나 불편한 사람은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나쁜 시력을 가진 사람이다.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 정상적인 시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시력보강을 위해 부득이 안경을 써야한다. 그런데 누구나 안경을 쓰기 위해서는 사전에 시력검정부터 해야 한다. 이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것은 결코 의사를 위한 일이 아니고, 정확한 시력을 측정해 눈에 잘 맞는 안경을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절차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력검정표에는 최고시력이 2.0까지 밖에 없다. 2.0 이상은 아예 측정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다 1.0 이상은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정상시력으로 판정한다.
그러면 도대체 몽골이나 티베트 유목민의 시력검정표는 어떻게 생겼을까? 바늘 끝으로 점처럼 작게 쓰거나 그렸을까? 우리나라 사람은 확대경 없이는 볼 수조차 없는 것일까? 마냥 궁금하다.
어쨌든 안경을 쓰면 흐릿하게 보이던 물체가 맑고 밝게 보여서 좋다. 마치 희미한 어둠 속에 있다가 밝은 밖으로 나온 그런 기분이 든다.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보여서 아는 사람을 몰라보는 결례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안경을 쓰면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다. 불편함도 많다. 내가 처음 안경을 쓰던 시대는 유리렌즈 뿐이어서 무척 두껍고 무거워서 마냥 불편했다.
콧잔등은 늘 깊게 눌렸고 안경은 자꾸 흘러내렸다. 지금은 가볍고 얇게 압축한 렌즈까지 있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고도근시에 난시까지 겹쳐서 안경을 벗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할 수도 없다. 심지어 목욕탕에 들어갈 때도 일단은 쓰고 들어가서 자리를 잡은 후 한쪽에 벗어 놓고 일을 봐야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마스크를 할 수 없는 게 제일 불편하다. 추운 겨울 철이나 지금처럼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 때도 마스크를 할 수가 없다. 감기에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하면 안경알에 김이 서려 걸음을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불편은 나만 겪는 게 아니고, 초등학생부터 고령자에 이르기 까지 안경을 쓴 사람이라면 남녀 불구하고 다 그럴 것이다.
얼마 전에는 동네 앞산이 안 보일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했다. 불가피하게 외출을 해야 할 일이 있어 미세먼지 방지마스크를 하고 길을 나섰다가 결국 마스크를 벗어 던져야 했다. 안경 김을 닦고 걸으면 금새 안경알이 부옇게 되어 길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날 목이 따갑고 쓰리도록 미세먼지를 듬뿍 먹을 수밖에 없었다. 화가 잔뜩 나서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안경 쓴 불편함 때문의 엉뚱한 분풀이인지 모르지만, 미세먼지가 하루도 아니고 거의 매일 이렇게 심한데 ‘탈원전은 뭐 말라빠진 것이고, 석탄발전소 증설은 또 얼마나 얼빠진 짓인가’하는 울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미세먼지는 1급 발암물질로 혈관을 타고 체내를 돌아다니면서 각종 암과 질병을 유발한다고 한다. 특히 초미세먼지는 체외로 배출이 되지 않고 폐나 혈관 속에 축적된다고 한다.
대만이 탈원전을 했다가 미세먼지 때문에 포기했다는 기사를 읽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미세먼지가 이렇게 지독할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나라는 이제라도 탈원전 정책을 철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정부가 고집만 부리지 말고 찬·반 국민투표라도 붙였으면 좋겠다.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을 완전히는 되찾지 못해도 대기질을 좋게 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내 나름으로는 우선 석탄과 가스발전을 감축하고 원전 비중을 늘리는 것이 최선이지 않나 싶다. 물론 다른 방법들도 찾아야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노후 디젤차를 감축(장차는 생산 중단)하고, 전기 차. 수소 차의 확대생산을 장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중국은 유명 관광지 (귀주성 만봉림 지역) 주차장 한 편에 십 수 대의 차량이 동시에 충전이 가능한 전기 차 충전기(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 놓은 것을 본 일이 있다.
“한국의 푸른 하늘을 오각형으로 오려 편지봉투 속에 넣어 부치고 싶다.”
어렴풋하지만 미국의 대문호 펄벅 여사의 말이라고 기억한다. 미세먼지로 가려진 잿빛 하늘이 아닌 그런 푸른 하늘을 정녕 보고 싶다.
□ 나창호
전 부여군 부군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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