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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착한 사람 되겠습니다 / 나창호

등록날짜 [ 2019년04월08일 23시46분 ]

[나창호 칼럼]

착한 사람 되겠습니다

 

 

“착한 사람 되겠습니다.”
학교 꿈나무지킴이로 근무하는 S초등학교에서 매일 듣는 인사말이다. 1-2학년의 어린 학생들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하나같이 티 없이 맑고 천진난만하다. 점심시간에 선생님을 따라 급식실로 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치 어미닭을 따라다니는 노란 병아리들 같다.

 

3-4학년도 인사를 잘 한다. 그런데 머리가 굵어진 5-6학년 학생들은 그렇게 인사하는 아이들이 가끔은 있지만, 모두가 그리하지는 않는다. 어떤 학생은 그냥 “안녕하세요?”한다. 아마도 “착한 사람 되겠습니다”하는 인사말에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몸이 그만큼 훌쩍 자랐고, 생각도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내가 작년에 처음으로 학교 꿈나무지킴이를 시작할 때만해도 “착한 사람 되겠습니다”하는 인사말이 어린 학생들에게 좋은 생활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인간의 본성은 본디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에 근거해서 어린 학생들의 착한 본성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학교교육 방침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하다’는 순자의 성악설에 근거해서 본디 악한 심성을 반복적 실천교육을 통해 착해지도록 하려는 것인가?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나는 ‘착한 게 능사는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록 짧은 시간-1일 3시간 이내 4명 교대 근무-이지만, 1년 남짓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지켜본 바로는 학생들이 너무 나약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학교당국은 특수한 사정-장애학생이거나, 다리를 다쳤거나, 몸이 아픈 환자 등등-을 제외하고는 자가용 등·하교를 자제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다. 한 때 학교 측에서 제작해 준 ‘자가용 등·하교 자제 안내문’을 배부하면서 학부모들의 협조를 구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또 이를 지키지 않는 학부모에게 수시로 구두협조를 부탁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반발을 산 경우마저 없지 않았다.

 

지금도 자동차 소음이나 배기가스 분출로 인한 교육환경 저해를 우려해 자동차의 진입을 막으려 해도 막무가내로 교사(校舍) 가까이에 차를 대려는 사람마저 없지 않다. 이럴 때는 ‘제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 귀중함도 알아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뜻을 잘 이해하고 협조를 해주는 학부모도 없지는 않다.

학생들의 나약한 사례를 들어본다. 날씨가 춥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눈비가 오는 날은 자가용 등교가 부쩍 늘고, 하교시간이 되면 학부모들이 차를 가지고 일부러 아이들을 태우러 온다. 어떤 학부모들은 하교시간에 맞춰 미리 학교에 나와 기다리다가 아이들을 데려가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의지하는 버릇을 들이면 아이들이 나약해질 게 뻔하다. 조금만 어려운 경우를 당해도 부모에게 의지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습준비물을 빼놓고 와서는 부모들이 이를 가져오게 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빼놓고 온 물건을 들고 득달 같이 달려오는 학부모가 한 둘이 아니다.

 

비 오는 날에 씩씩하게 혼자 우산을 받고 오는 아이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드물다. 어떤 날은 수업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자가용으로 등교하는 학생이 있는데, 병원에 다녀오느라고 늦었다고 당연한 듯이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왔다면서 수업을 중단한 채 차를 태워 데려가기도 한다. 이러니 아이들이 나약해 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차가 없던) 아득히 먼 옛날이긴 하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더우나, 추우나, 1km 남짓한 시골의 학교 길을 친구들과 노상 걸어 다녔다. 학교에 늦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달음박질을 하기도 했다. 몸이 아파도 가급적 조퇴를 하지 않고 수업을 마쳤다. 학교에서 돌아오다 갑작스레 소나기라도 만나면 길가 원두막을 향해 죽어라 뛰어서 비를 피했고, 미처 피하지 못하면 흠뻑 맞기도 했다.

 

학교교정 한 곳에 커다란 바윗돌이 있고, ‘씩씩하고 슬기롭게’라는 교훈이 아래 위 두 줄로 깊게 새겨져 있다. 나는 교훈을 볼 때마다 “착한 사람 되겠습니다”보다 “씩씩한 사람 되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차 나라의 장래를 걸머질 아이들이다. 어려서부터 씩씩하게 키우는 것이 교훈과도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씩씩한 사람이 되겠다.”고 자꾸 말하다 보면 행동도 그리 따라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학생들이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등교하고, 거리가 멀어 부득이 차를 타고 오더라도 교문 앞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게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하교도 마찬가지로 걸어서하게 하고, 몸이 아프던지 하는 경우가 아니면 학교까지 차가 오지 않도록 하면 어떨까. 이렇게 하면 매사를 부모에게 의지하던 행태가 바뀌고, 조금이라도 나약함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식민지를 경영할 때 ‘운동장 없는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식민지 국민들이 나약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유를 먹는 사람 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 어린 학생들이 등·하교할 때마다 차를 태워 오가는 일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나약하게 할 뿐이다. 아이들이 조금만 아파도 안절부절 하며 호들갑 떨면 아이들의 심지만 여리게 할 뿐이다. 학생들이 등교한 후에는 학교에 맡기는 게 어떨까. 학교에도 보건실이 있지 않은가. 물론 이는 나의 단순한 생각일지 모른다.

 

 

□ 나창호 

전 부여군 부군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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