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30일 선거제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렸지만 곳곳이 암초로 지뢰밭이다. 이번 선거제 개혁안이 통과될 경우 28곳의 지역구 의석이 무더기로 줄어드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구가 없어지는 지역 의원의 집단 반발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최장 330일에 달하는 패스트트랙 숙려 기간에 따라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며 발생하는 ‘깜깜이 선거’가 우려되기도 한다.
내년 4월15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에는 선거구 인구 하한 기준선(15만 3,405명)에 현재 미달하는 전국 26개 지역이 통폐합 대상에 우선적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서울 종로(정세균), 서대문갑(우상호), 인천 연수갑(박찬대), 인천 계양갑(유동수), 경기 군포갑(김정우) 등이 해당된다. 한국당은 경기 안양ㆍ동안을(심재철), 안산ㆍ단원(박순자), 강원 속초ㆍ고성ㆍ양양(이양수) 등이다. 민주평화당의 경우 광주 서구을(천정배), 전남 여수갑(이용주), 바른미래당 광주 동구ㆍ남구을(박주선) 등이 해당 지역구다.
정당별로 민주당 10곳, 한국당 10곳, 민주평화당 3곳, 바른미래당 2곳, 무소속 1곳(이용호)이며, 권역별로 수도권 10곳, 영남 8곳, 호남 7곳, 강원 1곳이 인구 미달 지역이다. 이들 선거구가 평균 3개의 다른 선거구와 접경을 맞대고 있다고 가정할 때, 통폐합 영향을 받는 지역구도 80여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선거구 획정을 두고 인근 지역구 의원 간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정당 소속끼리 내전(內戰)을 치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가령 서대문 갑ㆍ을을 통합해 하나의 지역구를 만들 경우 민주당 우상호ㆍ김영호 의원이 경쟁하고, 전남 여수 갑ㆍ을을 합칠 경우 국민의당 출신인 이용주ㆍ주승용 의원이 맞붙는다. 물론 어느 지역이 통폐합이 될지는 인구 하한선과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 산이나 강 등의 지형지물을 고려해 최종 조정된다.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는 지역의 한 여권 관계자는 “지금은 지도부의 의지가 강해 끌려가는 분위기가 있지만, 본격적으로 지역구를 정할 시기가 올 때 폭탄이 터지듯 반대 여론이 분출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당의 한 의원도 “실제로 패스트트랙이 통과될지 몰랐다.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에 동의한 범(凡)여권 의원들도 막상 자기 지역구가 통폐합 대상이 되면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야가 지루한 협상을 이어가다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의석 소폭 축소ㆍ비례대표 소폭 증가라는 ‘타협안’을 내는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패스트트랙은 최장 330일의 숙려 기간 후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된다. 이 때문에 선거제 개혁안과 함께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돼야 하는 선거구 획정도 덩달아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권 한 관계자는 “선거구가 총선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변경되면 현역 의원이나 신인 모두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며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현역 의원은 다행이지만, 신인에게는 크게 불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김유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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