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지 시인의 첫 시집 ‘그리운 이의 집은 출렁이는 신호등 넘어’가 20년만에 출간했다.
출판물 홍수시대에 살면서 단단하고 야문 시집을 발견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오랜만에 함축되었으면서도 빠르게 스미고 깊이 번진 시집을 만났다. 105편의 시 모두가 품격이 있다.
작품해설을 맡은 마경덕 시인은 “관찰과 경험은 결합하여 다양한 결을 만든다. 작은 픽셀들이 하나의 전체적 모습으로 인식되기 위해 언어는 긴밀하게 작용한다.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시인은 곳곳에 그림을 숨겨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주로 생활이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를 활용한 것도 전략”이라며 “최수지 시인은 누구도 닮지 않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했다.
찰칵, / 그녀 웃는다 /나 덤으로 웃는다/ 햇살도/ 잦은 비 달래듯 웃는다// 첩첩 산 안개비 돌아/ 구멍마다 집 비운 배암/ 너도 나오고 나도 나오고/ 등진 그늘 비껴 앉은 숲이/ 사람 사이로 풍경을 옮긴다 //그리워 목 메이는 바람에 기대어/ 숨어도 들키는 진달래꽃 몰래 지는데 /이름 불러주길 기다리는/ 산목련 산벚나무 조팝 이팝/ 깜짝 눈인사에/ 소리 없는 폭죽으로 터지는 대책 없는 저 꽃무리/ 살아남을 또 하나의 기억/ 웃음이 평행으로 모두 모여/ 찰칵, 쉼표로 정지되는 봄 //초록이/ 하루치 봄날을 밀봉한다 -4월, 너를 배경으로 전문-
이처럼 낯설고 신선한 시어들이 가득하다. 최시인만 낼 수 있는 고유한 그만의 향기다
‘위대한’이라는 형용사와 갓 태어난 ‘시어’라는 명사를 키워드로 하고 있는 ‘수준 높은’ 시집. 밝고 맑은 듯 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이 책은 복잡한 세상을 잠시 잊게 하는 힘이 있으며 풍경 속으로 함몰했다가 이내 깊은 심연 속에 빠져 길을 잃게 하기도 하는, 어둠 속에서 자기를 응시하는 시간을 갖기 딱 좋은. 134쪽 전망 출판사 값 1만원.
<조윤주 객원기자 333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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