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대에 흐른 서리 낀 달빛 [상권]
고천석 장편소설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1592(임진)년, 4월부터1598년까지7년 간 치러진 일본과의 전쟁에서 순절한 27명에 대한이야기다. 2012년이7주기(60년이1주기)라서, 2020년은 428년이 되는 해다. 그들 중에는 문인 16명과 무인이 10명이고 한명의 승려가 있다. 이외에도 이 전쟁에서 이들과 함께 순절한 대표적인 사람과 이름 없는 백성들이 수없이 많았다.
이 소설 중, 꿈 이야기는 윤계선이 쓴『달천 몽유록撻川 夢遊錄』에서 일부를 가져와 재구성한 것이다.
“절의節義”의 정신이 몸에 밴 사람들의 속성屬性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백성을 살피고 임금에겐 충신이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강한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의인의 길을 선택해야했던 배경에는 차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저승(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산다는 세계)에 있는 조상과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주게 될 후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계속 이어질 그들 가문엔 명예가 달려있는 일이었으니까. 대체로 그들은 조상을 욕되게 할 수 없었다. 가문을 절대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굳은 신념도 있었다고 본다. 후손들에겐 자랑스러운 선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그들의 한결같은 믿음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엔 달콤하게만 느껴지는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지 모른다. 당시엔 ‘충절과 효도’가 삶에 대한 지고의 선이었다. 허기야 지금은 충절과 효도가 한낮 삶의 표준으로만 일컬어 질 뿐 개개인의 왜곡된 생활엔 오히려 걸림돌로 여기는 것 같다.
‘사랑’도 아닌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부富’를 숭상하는 세상으로 탈바꿈해 버렸으니까.
그러나 ‘충절’은 마음을 바르게 세워 세상 사람을 위한 대의로서 장대한 것이었다. 충절의 정신은 국가가 어지러움에 처할 때 자신의 몸을 기껍게 내놓는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혼동해 망령妄靈을 부려서야 어찌될까. 마음의 중심이 바로 서있는 사람만이 ‘충과 효’를 실천할 수 있었다. 나라의 은혜에 ‘충의忠義’하고 임무에 ‘충실忠實’하고 신의에 ‘충절忠節’하고 하늘에 ‘충담忠膽’한 것으로 고결한 빛을 발휘하고자했다.
삼국사기에는 유교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군자는 국가를 다스리는 인정仁政을, 신하에게는 충절을, 자식에게는 효행孝行”이라는 것이 의로움으로 추앙 받는다고 했다.
정치는 ‘유교의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삼아 그 실현을 강조하고, 따라서 “하늘의 명령[天命]을 대리하는 존재를 왕으로 인식했다. 왕을 거역하는 일은 철저히 응징”하는 정치를 펼쳤던 것이다. 이는 논어에 “왕은 바람이요 민은 풀이라 바람이 불면 풀은 눕게 마련이다”라는 것을 빗대어 사회기강을 확립 하려했던 것이다. 이런 ‘절의’의 정신을 물려받은 충신들이 조선조 중기에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일본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다가 모두 전사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추증된 벼슬은 영의정10명(정일품)좌찬성5명(종일품)판서8명(정이품)참판2명(종이품),나머지는 살아생전 당사자가 추증벼슬을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들 중에는 문‧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이 많았다. 학문과 덕망을 두루 갖춘 이들로 모두가 초시 또는 전시까지 통과 한 신분들이다. 이런 덕행은 그들 가문에 대대로 이어질 것이다. 덕망과 인품이 높은 이들, 전쟁에 앞장서고 생명을 나라에 바친 유다른 사람들, 이런 아름다움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고, 또 미래로 유수와 같이 흘러내릴 것이다. 어느 시대에서도 그 고귀한 가치는 바뀌지 않고 계속 추앙 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영예로움은 이 삼라만상에 찬란히 그 빛을 발해 영원히 꺼지지 않을 터다. ‘충신忠臣’ ‘열사烈士’가 나라를 섬기다 국난을 당했을 때, 목숨을 바쳐 인仁을 이루는 것이’ 바른 도리라 했다. 그들이 속세에서 인과 의를 중시했다면 죽음이 곧 의의 길이고 인을 이루는 것이 자연의 근본 섭리가 아닐까싶다.
나라에 ‘충절’을 부르짖던 많은 고위직 관리들이 막상 나라가 위급한 지경에 놓였을 때, 그들 자신의 안위와 처자를 위해 숨거나 도망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과도 같은 행태가 계속 된다면 우리의 앞날은 불행해질 뿐이다.
여기에 소개된 이들의 인품은 백성과 나라에 대한 충절의 정신이 독특했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런 최후의 결의로서의 다짐했던 이들의 의로움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 뼛속깊이 아리도록 가슴속에 스며들었으면 한다.
“장부丈夫가 국란을 당할 때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 어찌 구차하게 살길을 바라리오. 오늘 이 땅이 바로 내가 죽을 곳이다.”라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 위급함에 처한 이들의 한결같은 심성을 말해 주고 있다. 불의에 노할 줄 알고 의로운 일에는 생명까지 기꺼이 내놓았다. 남에게 굴하지 않는 이들, 전쟁이 일어날 때 그들은 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고 없고를 떠나 오직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겠다는 인의人義로 기꺼이 싸움터로 나섰다.
이들은 일상에서도 불의를 가까이 할 줄 모르는 강직한 삶을 살았다. 백성 사랑하기를 어버이와 같이 하니 백성들은 이들을 부모처럼 따랐다. 이들은 청렴결백으로 티끌 한 점 부끄럼이 없었다. 관리와 지방민들이 모두 이들을 기뻐하고 존경해 마지않았다는 그런 인품의 소유자들이었다.
천성이 강직하고 불의 앞에 굽힐 줄 모르는 품성이라서 남에게 헐뜯기고 때로는 임금의 몰이해로 미움을 사 수차례의 귀양살이에 시달렸으나, 풍전등화 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우주보다 더 귀중하다는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것이다.
‘옛사람의 절의와 고상한 문장에 이르면 책을 덮고 종종 탄식해 마지않았다’는 파담자, 그는 의리를 사모하고 그들의 절개를 아름답게 생각한 사람이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선비들을 접할 때마다 흐느껴 눈물짓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많은 인사들의 집안은 충‧효‧의‧열이 가장 대표적인 가문, 그 역시 나라와 임금에게 ‘충신’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이들의 부인은 남편에 대한 ‘열녀烈女’로서 목숨을 바치고, ‘효자孝子’인 아들은 진중에서 아버지를 보살핀다는 효심으로 도륙되었다. 그의 노복들 역시 주인의 인품에 감복해 그를 따라 ‘의인義人’으로써 인생을 전쟁터에서 마감했다. 이들 중 다수가 삼강행실에 기록되었다.
죽음 직전엔, 의로운 죽음이든 그렇지 않든, 사람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 성향을 드러내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어떻게든 생명 줄을 이어가려 애걸복걸이고, 또 다른 이는 자기 생명 줄을 내놓는데도 담대했다.
여기 이 순절 자들의 영령英靈은 우주 어느 곳에 안착해 있을까. 지은이의 의지는 꿈에서라도 이들 영령과 교류를 트고 싶었다. 그들 내면의 세계가 몹시도 그리웠기 때문이다.
진주 남강을 찾아 의암 바위에서 눈물겹게 강물을 바라보면서 제일차의 승전의 감격은 잠깐 스쳐갈 뿐, 2차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는 그 때의 처절한 서사적 광경이 추상화처럼 떠올랐다. 탄금대를 돌아 남강 변을 거닐면서 숨 가쁜 수세에 몰린 조선군의 진영과 남강에 뛰어드는 이들의 용맹함을 영안靈眼으로 지켜보기 위해 지은이의 마음은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야했다.
지은이는 그들 속 깊은 마음을 감지하려는데, 파담자처럼 꿈이 아니라도 그 어떤 경우든지 감지했으면 했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그들의 사상과 생활상을 적어놓은 단편적인 글과 후손들의 구전을 통해 어느 정도 서술이 가능했으나 전쟁터에서 벌어진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지 못한 미흡함이 없지 않다. 심연과도 같은 이들의 내면의 경지를 세속인世俗人이 어찌 글로 다 옮길 수 있을까.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온 우주에 흩어져 잠겨 있을 것이다. 오랜 침묵을 지키며 앞으로도 여전히 정적에 묻혀있을 것이다.
― <프롤로그>
- 차 례 -
프롤로그(Prologue)
제1부 선조와 그 신하
제2부 도요토미와 그 부하장수
제3부 천년이 지나도 다시 오지 않는 이 밤
에필로그(epilogue)
부록
[2020.05.29 발행. 539쪽. 정가 5천원(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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