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교정시설에 수용된 성소수자인 수용자의 처우 기준을 정한 ‘성소수자 수용처우 및 관리 방안’(아래 ‘성소수자 방안’)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행정심판 재결이 나왔다. 10월 20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아래 중앙행심위)는 천주교인권위원회가 법무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이의신청 기각결정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우리는 이번 재결이 성소수자 수용자가 처우의 위법성·부당성을 따져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평가하며 환영한다고 밝혔다.
2019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전환 수용자에 대한 차별 및 인권침해 등’ 사건에서 법무부에 “성소수 수용자 수용 현황 및 처우 실태 등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종합적인 개선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전환 수용자의 수용동 배치, 호르몬 치료나 외부병원 진료 등 의료적 처우, 속옷 선택과 목욕 등 수형생활 전반에 걸쳐서 성전환 수용자의 처우가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에 부합하는지 전국적으로 실태를 파악하고 그 개선책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개정된 「수용관리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 제39조(성소수자의 처우) 제3항은 성소수 수용자의 성적 정체성에 적합한 수용동에 독거수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 기준과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성전환 수용자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고 외부 전문가 등이 참석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수용동과 독거수용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서 결정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성소수자의 개념·유형 등을 정확히 이해하여 처우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성소수자 차별행위, 인권침해, 성희롱 논란 방지 등을 위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으로 ‘성소수자 방안’을 마련해 산하 교정기관 등에 시달했다.
2019년 12월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성소수자 방안’의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법무부는 “성소수자 수용자의 거실 지정, 의료처우, 출정 시 계호 방식 등 구체적인 수용관리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이를 공개할 경우 형의 집행 및 교정(矯正)업무 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며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4호를 근거로 비공개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법무부가 이의신청도 같은 이유로 기각하자 지난 3월 중앙행심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번 재결서에 따르면, 중앙행심위가 직권으로 조사한 결과 ‘성소수자 방안’은 △검토배경 △성소수자의 개념 △적용 법규 △현 실태 및 문제점 △성소수자 유형 △개선 방안 △행정사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행심위는 “(‘성소수자 방안’이) 성소수자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과 교정시설에 수용된 성소수자의 처우와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으로서…공개될 경우 재소자들의 관리 및 질서유지, 수용시설의 안전, 재소자들에 대한 적정한 처우 및 교정·교화에 관한 직무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수행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장애를 줄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정보의 비공개에 의하여 보호되는 업무수행의 공정성 등의 이익에 비해 공개에 의하여 보호되는 국민의 알권리의 보장과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 및 국정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의 이익이 결코 작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법무부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아래 무지개행동)이 ‘제5차 자유권위원회 국가보고서 초안’에 대하여 제출한 의견에 회신하면서 “수용자 본인의 의견과 전문의 등 외부전문가 의견, 성정체성, 신체적 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등 성소수 수용자 처우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2020년 4월에 「성소수 수용자 수용처우 및 관리 방안(수정)」을 전국 교정기관에 시달하였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는 수정된 방안에 대한 무지개행동의 정보공개청구에도 비공개 결정했고, 무지개행동은 지난 10월 행정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법무부는 이번 인용 재결의 취지에 따라 ‘성소수자 방안’은 물론 2020년 4월 수정된 방안도 공개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법무부는 현재 장관의 지침 형식인 ‘성소수자 방안’의 내용을 법령으로 승격하도록 형집행법령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과거 행형 법제는 공개된 법령에는 추상적인 규정을 두고 구체적인 사항은 비공개된 하위 법령과 지침에 위임했다. 사실상 소장의 재량과 법무부의 공문 지시가 법률을 압도했던 것이다.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처우의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을 알 수 없어 불복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2007년 형집행법으로의 전면 개정에 따라 다소 개선되었으나, ‘성소수자 방안’의 비공개는 은밀한 지시가 공개된 법령을 압도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인권기준인 ‘유엔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넬슨만델라규칙) 제54조는 “모든 피구금자는 수용과 동시에 지체 없이 다음의 정보를 서면으로 제공받아야 한다”라고 규정하면서 “교도소법 및 구금 관련 법규”(a)를 이에 포함하고 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아래 형집행법) 제4조는 “수용자의 인권은 최대한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5조는 ‘성적(性的)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형집행법은 △여성 △노인 △장애인 △외국인 △소년 수용자에 대한 처우 규정은 따로 두고 있는 데 비해 성소수자 수용자에 관한 규정은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지침의 내용을 법령에 포함하면 그 내용이 일반에 공개됨은 물론 제정·개정·폐지 과정에서 입법예고를 통해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행 과정의 문제점을 미리 검토할 수 있다. 법무부는 이번 인용 재결을 계기로 성소수자 수용자의 권리와 처우에 관한 규정을 법령에 포함하도록 형집행법령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정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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