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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자화상'

우경주의 끌리는 그림 한 점
등록날짜 [ 2021년03월08일 18시46분 ]

 3월 8일은 1975년 UN에 의하여 공식 지정된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 루트커스 광장에서 남성 노동자와 같은 노동조건을 요구하며 빵(생존권)과 장미(참정권)를 달라고 시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날의 목적은 여성의 정치. 경제. 사회적 권리에 관한 의식 수준을 높이고 남녀가 평등하게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양성평등 이슈가 계속되고 있는 현시대에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자화상 한 점을 만나보자.
화가가 자신을 모델로 해서 그린 초상화인 자화상은 개인의 삶이 녹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작품은 시대의 선각자이며, 여성으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화를 전공한 나혜석의 작품이다.

                    

△나혜석/1928/캔버스에 유채/68*48cm/수원시립미술관

 

 나혜석의 ‘자화상’(일명 ‘여인의 자화상’)은 유럽 여행 중인 1928년에 그린 중년 여인의 상반신상화로 형태의 단순화와 강한 색채로 야수파적 성향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배경이 채도가 낮은 색으로 처리되어 관람자로 하여금 인물에 집중할 수 있으며, 전체 색조는 침울한 느낌이다. 짧은 머리에 세부적인 묘사를 생략한 블라우스를 입고 당당한 자세로 앉아 있어 작가의 자존감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수심 가득한 시선과 무겁게 다문 입. 길고 각이 선 코 등 얼굴 표정을 통해 삶의 고뇌가 전해진다.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 신여성으로 이후에 겪을 어려움이 담겼을 것이다. 작품 아래에는 혜석이라는 한글 서명과 영문 서명이 양쪽으로 적혀 있다. 이 작품은 나혜석 유족인 막내아들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 타계 시 공공미술관에 기증하라는 유언에 따라 현재 수원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나혜석(1896~1948)은 수원 신풍리 군수의 딸로 태어나 일본 도쿄의 여자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김마리아 등과 여성운동을 모의한 협의로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되는데, 이때 변론을 맡은 인연으로 1920년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에는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났다. 서구인들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접했으며, 파리에서 야수파, 입체파 경향의 화가 ‘로즈 비시에로’의 아카데미 랑송에서 수학하며 당시 유럽 화단에서 유행한 예술 사조를 직접 체험했다. 1년 8개월에 걸친 여행 기간 동안 세계 각국의 생활을 보며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갔다. 나혜석은 1921년 경성일보 내청각에서 첫 개인전 이후 조선미전 제1회(1922년)부터 세계 일주를 했던 제7, 8회를 제외한 제11회까지 (23회에 걸쳐) 총 18점을 출품하여 입상했다. 생전에 약 300점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미발표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지만. 나혜석의 작품이라고 인정되는 현존 작품은 40~50점에 불과하여 일생에 걸쳐 치열하게 몰입한 예술세계를 다 볼 수 없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문인으로서도 많은 글을 집필했다.  일본 유학 중에도 ‘조선여자 친목회’를 조직하고 기관지‘여자계’에 자전적 소설 ‘경희’를 출간하여 여권 의식에 관한 글을 발표했으며, 이후에도 당시 조선 사회의 부조리함과 전통과 관습에 도전하는 글을 여러 문학지에 기고했다.

 

 나혜석은 세계 여행 중 최린과의 불륜으로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고, 사회의 냉대와 경제적인 고통을 겪으며,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편안한 삶과 보편적인 가치를 거부하고 남녀평등, 여권신장을 부르짖었고, 전통과 관습에 저항하며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고자 했다.

 

 나혜석은 한국 근대미술사. 문학. 여성학 연구분야에서 다각적인 평가를 받는 예술가로 그녀의 삶을 다시 조망하는 전시와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봉건적 인습과 권위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에 도전장을 던지며, 여성의 권리를 위해 노력한 근대 여성운동가로, 3.1 운동으로 투옥된 독립운동가이며, 여성의 주체성을 주장한 시대의 선각자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나혜석을 한국 근대 여성사에서 100년을 앞서 산 선각자라고 이야기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들의 인권과 양성평등을 위해 그녀만큼 적극적인 활동을 할 이가 있을까?

 

 

“사 남매 아이들아, 어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인형의 家  / 나혜석

 

1​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2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자

 

3
나는 안다 억제할 수 없는
내 마음에서
온통을 다 헐어 맛보이는
진정 사람을 제하고는
내 몸이 값없는 것을
내 이제 깨닫도다

 

4​
아아 사랑하는 소녀들아
나를 보아
정성으로 몸을 바쳐다오
맑은 암흑 횡행(橫行)할지나
다른 날 폭풍우 뒤에
사람은 너와 나

 

<후렴​>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 주게

 

- 매일신보. 1921.4.3

 

 

<우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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