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명 시인의 앤솔러지(anthology)가 출간됐다.
많은 시집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면 속빈 강정 같아 물음표가 절로 고개를 드는 요즘 알찬 앤솔러지가 출간됐다.
세계일보 신춘문예 출신인 마경덕 시인을 비롯하여 현대시학 출신 한정원 시인 등 나정호, 원춘옥, 유민채, 이화인, 이주리 시인 등의 시가 수록됐다.
잘린 나무는 어떻게 긴 밤을 견디는 것일까/없는 가지가 사무쳐 온몸으로 벅벅 허공을 긁는다는 말, 허공이 욱신거려/손목이 돋는 봄을 기다린다는 말/이것은 손톱에 때가 낀 나무들만 아는 이야기가 아니다/ 피가 나게 허공을 긁어본/보기 좋은 나무들은 손목이 없다(마경덕시인의 환지통 일부 발췌)
여우의 불빛을 기억하고 녹음했다/ 빙벽에 부딪혀 퍼져나가는/ 하늘이 부풀고 있었다(한정원 시인의 오로라 지수 일부 발췌)
왜일까, 앤솔러지에 수록된 시를 읽다보니 살아생전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라고 말한 권정생 동화작가가 떠오른다.
시상(詩想)이 펼치는 무한한 상상을 엿봤기 때문일까.
생존보다 늘 한 계단 위의 자본의 틀/눈빛도 잃었다/ 부재의 좌표 위에서/잃어버린 주어를/ 저물도록 기다렸다(이주리 시인의 슬픔의 연대기 일부 발췌)
컴퓨터 모니터에/ 슬며시 내려앉은 모기 한 마리//화살 마우스 커서로/잽싸게 쏘아보지만/어림없다는 듯 꿈쩍도 않네// 아차!/ 모니터 안과 밖/ 가상과 현실에서 번번이 허방 짚는/ 내 근시안의 착오(이현실 시인의 안과 밖 전문)
빛을 겹겹이 껴입은 덩굴장미는/ 이 계절의 가장 밝은 등/ 일제히 심지를 세우고 유월을 밀어 올린다(원춘옥 시인의 등(燈) 일부 발췌)
시의 편 편을 읽다보면 함께 공감하고 때론 소박한 어둠의 눈물 같다. 그러나 문장 뒤편에 감춰진 행간을 들여다보면 올곧아 푸른빛이 도는 서슬퍼런 시들이 주류를 이룬다.
더러는 따스한 위로가 되기도 하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비판하는 앤솔러지 [시의 끈을 풀다](지성의 샘 출간)를 읽다보니 봄밤의 껍데기가 수북 쌓인다.
<조윤주(시인) 객원기자 333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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