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주의 '끌리는 그림 한 점']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정선/1751년/ 국보 제 216호/ 종이에 수묵/78.2-138.2cm/ 국립 중앙박물관
지난 4월 故 이건희 회장 유족이 2만 3천여 점의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했다. 그중에서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금속, 도자기, 토기, 서화, 목가구 등 9,797건 21,600여 점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배치되어 국민들이 다양한 문화유산을 누리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증품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작품인 <인왕 제색도>는 국보 제216호로 조선 영조 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그린 작품이다. 진경산수화란 다른 작품을 모방하거나 상상하여 그린 관념적인 작품이 아닌 우리나라의 경치를 눈으로 관찰한 후 화폭에 담은 것을 뜻하며, <인왕 제색도>는 ‘금강전도’와 함께 정선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정선은 험준한 바위가 많은 인왕산을 큰 비가 내린 후 개인 순간을 포착하여 대담하고 단순한 구도로 화면에 옮겼다. 비에 젖은 바위의 봉우리 부분을 짙고 강한 필치로 나타냈고, 오랜 비가 만들어낸 폭포. 그 아래 산을 두르고 있는 안개, 짙고 옅은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기와집을 그려냈다. 윗부분인 원경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그렸지만, 산 아래 근경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부감법으로 표현하여 인왕산을 바로 앞에서 보는 느낌이 들어 이전의 산수화하고는 확연히 다른 현대적인 느낌까지 든다.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것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인왕산을 그린 것이 정선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뜻을 함께 했던 친구의 병이 회복되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았기 때문이다.
정선(1676~1759)과 이병연(1671~1751)은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나 스승 김창흡에게서 동문수학한 죽마고우다. 정선보다 5살 위인 이병연은 정선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진경 시와 진경화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며, 평생 동안 우정을 이어 나갔다.
정선이 65세가 되던 해 양천 현령으로 재직하게 되었는데, 이때에도 그들은 시와 그림을 보내며 서로 소식을 전했다. 정선이 한강 주위 풍경을 그려 이병연에게 보내면 이병연도 시를 짓고, 이병연이 시를 보내면 정선이 그에 맞는 그림을 보냈다. 두 친구는 상대의 작품을 격의 없이 평하며 조선 최고의 작품을 남겼는데, 이때 만든 작품을 모은 화첩이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이다.
이러한 친구가 노환으로 임종을 앞두게 되었다. 1751년 5월 하순, 며칠째 계속된 비가 그친 날, 76세의 정선은 장마가 개인 인왕산처럼 친구가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왕산을 그려 나갔고, 친구의 집도 담아냈다. 그러나 인왕제색도가 완성된 며칠 후 정선의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세상을 떠난 이병연. 60년 지기 친구를 잃은 정선의 심경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우정이 가득 담긴 이 그림을 보며 거리 두기 강화로 지인들을 만나기 힘든 요즈음이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가까운 지인에게 통화로나마 자주 고마운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지? 비 개인 인왕산처럼 코로나와 힘께 힘든 모든 것이 물러나 하루빨리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길 고대한다.
<우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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