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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태 시인 5 시집 '시 찬 뜰' 출간

등록날짜 [ 2023년01월17일 11시51분 ]

긴 동면에서 깨어나는 산 위에 옷을 반쯤 벗은 겨울이 누워있고 아직은 봄을 나르는 바람 끝이 맵습니다.

동행이라곤 그림자밖에 없는 속세와 뚝 떨어진 외론 산방에서 봄으로 띄우는 편지를 쓰듯 보잘것없는 한 삶의 편린들을 모아 모아 시를 사랑하는 님께 드립니다. 맛깔스러운 울림과 감동이 없어도 여리고 순수한 눈물같이 맑은 혼을 쏟아낸, 고뇌가 배인 결정체입니다. 설렘으로 다가가고 싶은 소망이 잔잔한 그리움으로 이어지면

다시 저 봄의 언덕에 꽃을 피우겠습니다. 봄이 오는 산방에서 이영태.(저자의 말) 

 

∥ 서 평 ∥

- 이영태 시인 제 5 시집 『시 찬 뜰』

                                문학박사 김옥자 시인

 

인류의 창조 이래 가장 축복받은 것이 있다면 언어일 것이다. 언어는 소통의 통로이며, 삶에 있어서, 우주와 지구, 세상을 지탱해나가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영태시인은 시사랑이 특별하다. 체험 속에서 비롯된 사상과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성으로부터, 내적 의미를 찾아나서는 고독한 상상력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시대적 사회상의 고된 삶을 위로하며, 자연과 현실의 친화적 사유 속을 관조하는 그의 어법은 맑은 시 세계로 투영화 되었다

 

이영태시인은 2018년 6월 첫 시집 「발자국 소리」를 발행하였으며, 2집 3집 4집에 이어 제5집 「시찬뜰」을 출간하기까지 시에 대한 열정이 각별한 면을 알수가 있다.

 

제5집 「시찬뜰」 시집 원고를 받아들고 시찬뜰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시로 가득찬 뜰’ 이라는 뜻을 가진 시집은 시인의 고요하고 맑은 시심만큼이나 청아함으로 와 닿았다. 

어쩜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시로 가득한 뜨락에서 살고 있음에도, 그 인지 능력을 망각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영태시인은 삶속에 내재되어 있는 사물에서 독창적인

아포리즘 형식을 구가하며 서정적 삶의 묘사를 표출해내는 깊이가 있어, 그의 시를 감상하다보면  막힘없이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마음으로 편안해짐을 느끼게 된다.

선뜻, 그 한편 한편의 시, 풍경 속에는 한 시대의 역사와 삶의 모습들이 가지런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듯, 풍진 세상을 견디고 살아낸 연륜 속에서 이룩해낸 내면의 자아실현에 대한 절제가 그의 시 행간 속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와,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내리는 삶의 모습들 속에서, 역설적 심상으로 드러남으로서, 독자의 감성에 파문을 일으키는 결정적 신비로움으로 탄생하는, 이영태시인의 독특한 시사랑이다.

 

좁은 계단에 사정없이 얼어붙은 눈 위를

달은 구두로 곡예를 하고

고달픈 하루를 어깨에 메고 오면

허름한 옥탑방 구석에 헌 이불을 감싸고

외론 들 고양이처럼 웅크린

내 남루한 실존이 서럽고 싫었던

자폐가 주는 우울증 환자같이 황폐한 삶

극한의 비린내가 날 만큼

그해, 가리봉동 겨우살이는 그랬다

그래도 시골스럽고 정감 있던 그 이웃들

아픈 추억이 자꾸 떠오른다

지금도 외로운가 보다, 늙는 것이...

- 「그해, 가리봉동 겨울」 중에서

 

왜, 신은 인간에게 지독히도 고독한 눈물진 삶을 주셨을까. 때론 강인한 본성으로, 때론 아니 가면 안 될 길이기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숱하게 하며 살아간다.

그리하여, 그 삶 속에서 터득하게 되는 진실 된 삶의 모습들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 먼 훗날 그 가치성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황금찬 시인님은 ‘경험은 가장 큰 재산이다’. 라는 말을 하였다. 경험 속에서 발견되는 삶의 본질, 그 가치성을 깨닫게 되기까지의 객관적 시선이다.

화자는 「그해, 가리봉동 겨울」에서 하루 동안 일선에서 혼신을 다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리봉의 정서적 환경에서 떨쳐낼수 없는 현실의 고됨을 세월이 흐른 후 회고할 때 아픔을 함께 했던 이웃들을 그리워하고 오히려, 그 힘들고 고난의 길이었던 그 시절의 순간들을 애상하는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가리봉은 서민들의 애환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마을, 골말이라는 마을 이름에서부터 가리봉 이름을 갖게 되기까지 서민들 삶, 그 모습들의 애환이 골목골목 스며있는 곳, 화자는 높은 빌딩이 눈부시게 즐비한 도심 속에서 가리봉이라는 정서가 어쩜 세월이 흐른 후, 더 질척한 정감으로 남아있음을 알수가 있다.

 

엄마를 부탁해의 저자 신경숙 소설가가 16세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이 가난하여, 서울로 상경하여 자리를 잡고 79년에서 81년까지 여공생활을 했던 곳도 바로 가리봉동, 구로공단이다. 구로공단은 70년대 80년대 시인, 작가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영태시인은 가리봉동 겨울날의 춥고 고달픈, 그래서 더 아픈 추억들 사이에서, 더욱더 잊히지 않는 이유일수도 있지 않을까.

 

오후 늦게야 일을 끝내고, 일일이 찾아가

약간의 선물과 수북한 김장을 전했다

곧 추위도 닥칠 텐데 저 외로운 노인들은

누가 돌보나..

맛있게 드시라며, 몰래 봉투 하나씩 야윈

손에 꼭 쥐어드릴 때, 왜 그렇게 어머니

모습이 교차하고 가슴 찡하던지..

할머니 안경 속으로 맑은 이슬이 보였다

끝난 뒤, 노란 은행잎 나부끼는 석양에서

차 한 잔씩 나누는 눈빛들이 참 맑았다

그래, 함께 빚는 행복이 아름답지

이렇게 어울려서 정 나누고 살아야, 사람

냄새나는 살맛 나는 세상이지…

- 「선행」 중에서

 

인간은 힘들고 지친 삶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하여 자신의 정성과 사랑을 쏟게 된다. 이웃의 어려움을 더 잘알수 있으며, 이해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통은,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누구보다도 이해할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어찌 사시장철 푸른 잎만 틔우고 활짝 핀 꽃만을 피우고 있을 수 있겠는가

눈물을 흘리던 순간들, 태양빛 들지 않는 삶의 골짜기를 지나던 고된 삶의 모습들 속에서. 인간은 본디 서로가 부딪고 부비며 인생의 고난을 서로 나누고 위로하며 사는 것이라고 화자는 「선행」 시에서 진솔한 언어로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후 늦게 일을 끝내고, 고된 심신을 스스로 위로하며, 외로운 이들을 위하여 일일이 찾아가 선물을 주고, 김치를 전해주고, 노인들의 외로움을 도닥여주는 심성. 추운 겨울 노인들을 걱정하고 바라보며, 어머니를 생각하는 정이 도탑다.

삶의 고난을 굽이굽이 넘어서며, 인생에 대한 철학적 본능으로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진지한 삶의 모습을 알레고리적 개념으로서 들여다보게 된다.

 

인류 역사는 저렇듯 도도히 흘러야 하리

수많은 장애물이 앞길을 막아도, 절벽에

떨어져 괴성을 지르고 온몸이 부서져도

아무렇지 않게 서로 감싸 안으며 유유히

굽이치는 저 강물처럼...

삶도 저렇듯 온전한 순리로 살아야 하리

아집과 독선이 꽉 차서 타협하지 못하는

인간처럼 질서를 어지럽히지도 않으며

오직 하나, 창대한 기적을 이루기 위해

도도히 흐르는 저 순리처럼...

가장 아름다운 삶도 저렇게 살아야 한다

아무리 큰 뜻을 품었어도 겸손해야 하며

세상에 으뜸가는 선의 표본인 물 같은

순리로 자신을 낮추고 살아야 사람들의

아름다운 존경을 받으리…

- 「저 강을 보라」 전문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한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하여 유발하는 의문들일 것이다. 한편의 소설속 주인공이 현실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설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한 모습을 보편화하여 상상속 인물로서, 시대적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한 시대 삶의 모습들을 주인공을 통하여 언어화하기까지 특징적인 시대상을 담아내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도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생활적 요건들 속에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그 문제를 풀어내기까지 또는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으며, 옷을 만들어내는 공장에서 누군가 헌신을 하였기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 앞에서 상대성적 양상을 띠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머물러가지 않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뜬금없이 찾아드는 그리움에 대하여,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예의에 대하여. 「저 강을 보라」 시에서 구체적인 관념으로 서술하고 있다.

 

오직, 하나 창대한 기적을 이루기 위해/도도히 흐르는 저 순리처럼 화자가 주는 참모습속에서 순리적 흐름의 강물이 된다.

 

참 예쁘구나, 네 이름은? 왜, 나를 향해서

미소 짓나? 무슨 좋은 일이라도...

꽃다운 나이에 얼마 못 산다는 의료진의

판정을 받고, 산책하다 우연히 돌부리에

넘어지면서 만난 한 송이 꽃과의 대화가...

들판에 아무렇게 터를 잡고 잠시 피었다

지는 꽃처럼 곧 사라질 자신을 돌아보며

애틋하게 교감하다 그만 홀로 떠는 모습

안쓰러워 집에 데려와 봄엔 화단에 심고

또 외로워 보여서 고운 꽃들을 데려다가

친구를 만들어주고...

그렇게, 수많은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 수 있게 사랑으로 가꾸기를 4십여 년

얼마 못 산다던 삶이 꽃들과의 인연으로

지금껏 숲속 이쁜 꽃 정원에서 평온하게

산단다

또한 꽃과의 해맑은 사랑을 나누다 보니

꽃을 닮아서 꽃 천사로 불리는 공주님이

다양하고 오묘한 향기의 꽃과 나눈 시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시 찬 뜰''로 사랑을

받는다니 그 얼마나 감사한가.

- 「시 찬 뜰 (어느 여인의 삶) 」 전문

 

얼마만큼의 아픔을 견디고서야 세상의 빛을 받치고 우뚝 서서 아름답다 말 할 수가 있을까. 여물어가는 알맹이를 보기 위하여 껍질 속을 들여다보아야 알 수가 있고, 껍질 형태의 변화를 바라보며 알맹이의 내면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주어진 길을 끊임없이 걸어가다가 홀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곤경에 처했을 때, 또한 몸이 너무나 많이 아파 움직이지 못하여 세상과 단절이 될 때, 가장 간절해지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간절해질 때 모든 사물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것과 같이, 소중하고, 감사하고, 현재 자신의 앞에 함께 하는 것들에 대하여, 은혜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삶이란 좌절 속에서 희망이 싹트고, 역동적인 힘이 솟아나듯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게 되고, 그러한 소산들을 통하여 낯선 듯 찾아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원래 꽃이 피어 있는 것은 없고, 원래 나뭇잎이 갈잎이 되는 것은 아니며, 원래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리라.

꽃을 피운다는 것은 꽃의 이유 있는 삶이 담겨있고, 나뭇잎이 지는 가을날이 쓸쓸한 것은 나무에게서 나뭇잎의 결별이 아닌, 근본으로 돌아가기까지 역경의 시간이, 나무의 거름이 되고 새순이 돋아나기 위한 순리의 방식을 익히는 것이다.

 

들판에 아무렇게 터를 잡고 잠시 피었다/지는 꽃처럼 곧 사라질 자신을 돌아보며 애틋하게 교감하다 그만 홀로 떠는 모습/안쓰러워 집에 데려와 봄엔 화단에 심고 -중략-

「시찬뜰」에서 화자는 꽃을 보며 삶의 한 모습을 들여다

보게 된다.

 

한 송이 꽃이 존재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마주한 모든 것에서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서로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장의 책장을 훌쩍 넘기면, 다른 세상으로의 공간이 펼쳐지는 신기루 같은 것을 희망이라 부를지라도, 우리는 스스로 행복해지는 마음의 바다로 흘러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멈춰선 순간들을 가슴에 담으며, 삶의 비결을 찾아 나선, 한 방울의 사랑이 큰 바다로 번져가는 고귀한 만남 앞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사랑인 것이다.

 

<표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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