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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홍길동 洪茶丘 拔都 (전자책)

등록날짜 [ 2023년03월06일 20시34분 ]

몽골의 홍길동 洪茶丘 拔都 
주채혁 논문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울란바아타르 스텝에서 숨쉬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여기가 어딘지 아주 잘 모를 수가 있다. 생태사나 생태현실에 관해서도 그렇고 역사나 격변중의 역사현실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가 눈뜬장님이라면 자기비하가 너무 심한 걸까? 갈라보고 쪼개보며 비교분석한 것을 맥을 짚어 정리해보지 않아서다.
  일례를 들면 울란바타르시를 굽돌아 흐르는 톨강이나 셀렝게강 및 오르홍강은 모두 바이칼 호수로 흘러들어 북류(北流)하는 북극해권이고, 오논강이나 헤를렝강처럼 칭기스칸의 태생지 부르칸(不咸)산과 접맥되는 강은 훌룬호와 부이르호를 거쳐 몽골의 기원지 에르구네강을 에둘러 아무르(일명 黑龍)강을 통해 동류하는 태평양권이다. 전자는 물이 차서 거북이(龜)와 호랑이가 못 살고 거대 제국의 발전이 불가능했지만, 후자는 물이 그리 차지는 않아 거북이와 호랑이가 살 수 있으며 유목국가는 보통 목·농이 어우러져야 이루어지고 그래서 동북아시아 유목제국의 기원지가 모두 다 훌룬부이르 몽골스텝·눈(嫩)강 평원임은 북방민족사학계에서 공인된 지가 이미 오래다.
  곰녀(熊女)와 호녀(虎女)의 사랑싸움얘기로 점철되는 「단군(檀君)신화」의 태반도 물론 여기다. 조선(朝鮮)은 애초에 중국인이 한자로 그렇게 적었으니 중국발음으로 읽어 ‘아침의 나라’(朝Zhao國)가 아니고 ‘차탕’(朝Chao族: 순록치기)의 나라임이 밝혀진 사실은, 그래서 코페르니쿠스적인 금세기 일대의 사건일 수 있다.
  朝(유목)+鮮(방목)의「조선(朝鮮)차복‘누우델친’(순록유목민|馴鹿‘遊牧民’: Chaatang) 기원설」이기 때문이다. 정녕 몽·한은 그 창업 주도집단이 ‘누우델친’(Нүүдэлчин: Pastoral nomad: 유목민)기원이어서 우선 그 시원 생업태반이 일가일 수 있다. 물론 이론(異論)이 제기돼 치열한 과학적인 논증을 둔 진지한 토론이 많을수록 좋다.
  우리가 차탕 누우델친(순록치기 유목민)의 본향이라 할 레나강 유역 사하(새|塞: 야쿠츠크)를 본격적으로 탐사한 것은 2006년 6월 26일~7월 1일에 걸친 5일간이다. 2000년 5월경에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보르지긴. 쇼보 교수(몽골사)에게 레나강~예니세이강 일대의 순록 주식 이끼밭(鮮)에 관해 정보를 얻고 2004년 8월 초순에 정재승 봉우사상연구소장과 조용헌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부부가 동참했던 사하 답사를 했지만 여기서 순록치기와 그 드넓은 이끼밭(蘚: Niokq의 鮮: Sopka)을 직접 만나고 달려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영하 72도까지 내려가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진 사하의 오이미아콘 언저리에 위치한 한디가 압끼다 수림 툰드라 순록 여름유목지대로 답사를 떠나면서 필자는 『순록치기가 본 조선. 고구려. 몽골』[2008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의 초고를 들고 갔다. 2006년 6월 21일에는 이에 관해 야쿠츠크 국영TV의 인터뷰에도 응했다.
  탐사단은 필자(몽골유목사학), 김천호 교수(식생활문화학), 최준 박사(민속사학), 반기동 현지 기독교 선교사(북방몽골로이드 역사 연구생), 조영광 교수(중국인| 식생활문화학)와 삐까 에벤족 여대생 및 총을 멘 50세 전후의 길잡이 사냥꾼이었다. 한여름에 툰드라로 드는 산야에는 순록의 주식인 눈빛 흰 이끼(蘚)가 지천으로 널려 있기 마련이다. 며칠을 달려도 가없이 펼쳐지는 이러한 순록의 목초지(鮮)는 흰 이끼가 툰드라의 흰 눈 속으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이어진다.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입에서 “조선은 순록유목민의 나라!”라는 탄성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올 만큼 어마어마한 장관이고 알려지지 않은 무진장한 비경이다. 그 응달에 이끼가 나는 밑밑한 산등성이의 선(鮮)들이 겹겹이 좍좍 거대한 선(線)을 그리며 뻗어나간 웅장한 광경을 감상하며 “아, 차탕의 후예인 우리에게 선의 예술이 이래서 생겨났구나!” 하고 감탄했다. 저습지대 순록 목초와 더불어 자라는 낙엽송이 있고 앙증스럽게 작지만 버드나무와 진달래도 있다. 우리와 역사적인 인연이 무던히도 끈질긴 수목들인가 보다.
  물레질해 실을 자아내며 읊조리던 우리네 할머니의 고저굴곡이 없이 펑퍼짐한 노랫가락이 꼭 이곳의 그것을 빼닮았다. 1993년 8월초에 훕스굴 에린칭 람베 설산(雪山) 차탕 유목지 곁을 지나며 이 후미진 이국땅에서 우리말을 쓰는 이는 필자뿐이어서 혼자 우리 타령 비슷한 가락을 흥얼대며 외로움과 두려움을 달랠 적에, 올 초에 타계한 몽골샤먼 연구자 오. 푸렙 교수가 “당신의 그 가락이 꼭 설산 위의 차탕(순록치기)의 그것을 닮았다”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 순록을 정식으로 만나 「조선 순록유목민기원설」을 제기하고 나온 것은 그로부터 6년 후인 1999년 8월 11일 훌룬부이르맹 오룬춘기 박물관에서였고 그 가락을 다시 상기한 것은 또 그로부터 7년 후인 2006년 6월 하순에 사하 에벤(鮮=小山: Sopka)족 할머니 노래를 듣고서였다. 15년만의 자각인 셈이다. 산악 밀림지대(大山: Gora)와 너무 다른 무한히 평평한 대지생태를 닮아나는 소리가락일까. 개인날 아침이면 날이 가물려면 운다는 뻐꾸기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SBS와 KBS 텔레비전 방송국 취재팀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순록치기 유목 핵심지역 관계 내용들만 찍어내는 탐사로정으로는 이러한 감격 속에서 순록치기 생태현장을 몸소 직접 체험하기가 매우 어렵다. 중고 봉고차에 배낭과 함께 실려, 금광 채굴을 위해 근래에 새로 뚫은 아슬아슬한 험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
  목적지인 한디가 압기다 여름 순록유목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또 약 20Km를 순록을 타고 더 들어가야 한다. 말은 등에 안장을 놓고 타지만 순록(Chaabog: Цаа буга)은 목과 어깨부위에 안장을 얹고 탄다. 게다가 순록 목초지에는 이끼와 풀뿌리가 흙에 뒤엉켜 생겨난 당라순(Danglasun)이라는 늪지대가 있다. 당라순은 툰드라의 빙수 늪에 생긴 작은 디딤돌 같은 것이어서 잘못 디디면 얼음물에 빠지기 일쑤다. 이런 풍토에 적응한 순록의 발가락은 당라순을 움켜쥐고 걷게 진화돼 왔다. 고도의 균형 감각이 없으면 순록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아 사냥해먹고 살아낼 도리가 없다. 우리 무당이 작두를 타고 걷는 기의 집중과 균형미는 이에서 비롯된 걸까? 여기는 너무 추워서 양이 못살고 살아 따라다니는 음식인 양이 없는 데서는 몽골경기병이 작전을 할 수 없다. 물론 스텝의 타르박(乾獺)굴에 발만 빠져도 치명상을 입는 몽골말이 순록목초지를 내달릴 수가 없기도 하다.
  도중에 물을 마시면 긴장이 풀려 중도에 낙오한다고 현지 가이드가 일러줘서 꼬박 5시간 반을 물 한 모금도 못 마시며 걷고 타고, 그 길 아닌 길인 순록목초지를 소나무 지팡이로 균형을 잡으며 또 걸었다. 노인대원들은 너무 자주 떨어져서 순록을 못 타게 하고 젊은이들만 타고 걸었다. 병원이 있을 리 없는 현지에서의 낙상이 우려돼서다. 목이 타고 순록목초지가 누런 황색으로 뿌옇게 눈에 들어왔다. 균형을 가까스로 잡아가며 순록을 타고 온 젊은이들은 그날 밤 내내 허리가 아파서 신음을 해야 했다.
  삐까는, 사회주의 집단목장화로 이동성 본질이 거세된 순록유목업이 어렵게 되어 백수로 헤매던 아버지가 병들어 죽고 근근이 애들을 돌보며 막일을 해오던 어머니도 병이 들어 입원했으나 입원비가 없어 나앉는 판에 본인도 대학을 중퇴하고 미용사 노릇을 시간제로 하던 터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시에선 그토록 풀이 죽어있던 에벤족 처녀였다. 그런데 자기 생업 생태태반인 수림툰드라 순록치기 여름유목지에 돌아오자마자 삐까가, 돌연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야생마가 되어 나는 듯 산야를 치달렸다. 3살적에 이곳을 떠났단다. 그런데도 생태태반이란 이런 마술적인 세계인가보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처녀가 되면서 광대뼈가 솟아 지금은 창피하게 느낀단다.
  수림툰드라 끄라이(邊地)의 새벽은 오들오들 떨렸다. 화덕의 불이 꺼지니 온통 소동이 일어났다. 가이드가 군불을 지피고서야 다시 잠들이 들었다. 화덕 곁에서 땅바닥에 낙엽송 가지를 깔고 그 위에 곰이나 순록의 모피(Fur)를 겹쳐 얹고 누어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담요를 몇 겹 겹쳐 깔아도 땅바닥의 한기(寒氣)가 차단되지 않아서 자연섭리의 오묘함을 새삼 실감했다. 모깃불도 효과가 있기는 했으나 악머구리 끓듯 윙윙대며 떼로 달려드는 모기를 막을 방도는 모기장을 치는 길밖엔 없었다. 순록의 천적이 모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늘한 바람이 스치기만 하면 그 지겨운 모기떼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최저온도가 영하 40~45도까지 내려가 너무 추워서 호랑이도 못산다는 대흥안령 북부의 최고 혹한지대인 훌룬부이르 몽골스텝의 껀허(根河)일대가 순록유목제국의 중심보루(槁離[Qori=순록유목]國)가 됐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비상식량으로 가지고간 누룽지와 볶은 콩이 현지음식에 비위가 상해 뒤집힌 속을 달래주고 허기를 채워주었다. 이번 학기에 몽골제국시대사 박사학위논문 2편을 심사해 통과시키고 온 터라 피로가 계속 쌓여온 데다가 일교차가 수십~100도까지 나서 감기를 달고 다니고 목가래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순록을 잡아 요리하고 가죽을 손질하는 법이나 순록치기의 세수법이며 유제품을 만들어 보관하는 법을 유심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양치기들의 그것과 거의 상통했다. 순록 도살과정에서 모기가 순록 가죽을 뚫고 몸속에 유충을 심어 새끼손가락만 하게 자라고 있는 걸 발견하고 이지대 생존실태의 엄혹함을 재삼 실감키도 했다.
  순록치기의 문화를 양치기가 계승하고 상호소통하며 살아왔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울야프 고분 출토 스키타이 유물인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품 마두황금순록‘뿔’탈 유물을 상기케 된다. 말에는 물론 뿔이 없다. 수림툰드라의 기(騎)순록 순록유목민의 계승자가 스텝의 기마 양유목민임을 보여준다. 오가는 길에 수림툰드라지대의 샘 파기도 관찰했다. 장작더미를 언 땅위에 쌓아놓고 불을 오래 지피면 얼음이 녹아 땅이 꺼져 웅덩이가 생기고 물이 고인다. 그걸 소와 순록이나 곰과 늑대들이 마시고 산다. 이 지대의 현행 순록유목 60~70%가 자본가가 시장을 겨냥해 투자해 경영하는 것이고 전통적인 순록치기 양식은 점점 급속히 사라져가는 중이라는 정보도 확보했다.
  돌아오는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길 없는 길을 오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비가 와서 기나긴 샛강물이 불어 차가 못 건너갈 수 있다는 바람에 예약한 비행기 시간에 못 갈 형편이 될 뻔도 했다. 특별히 총을 멘 가이드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길을 찾아 홀로 떠난 터에 다시 귀로마저 잃고 헤매는 100분여 시간동안을 선(鮮)의 당라순 습지 위에 앉아 기다리는 그 공포의 순간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다. 굶주린 늑대 떼와 곰의 기습을 받는 날엔 도무지 대책이 없는 상황이어서 벌벌 떨며 싸늘한 보슬비가 뿌리는 가운데도 배고프고 졸려서 감겨오는 눈을 서로 살을 꼬집어 억지로 띄우며 “예서 이렇게 졸면 이대로 죽는다!”고 계속 각성시켜주면서, 가슴 졸이던 수림툰드라 순록유목지대 대탈출 추억이다.
  여기, 이 아까운 지면을 사하 순록목초지 탐사기록으로 이렇게 채우는 건, 특히 북아시아 몽골로이드 유목태반사에서의 그 압도적인 비중 점유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 관한 한 전문가나 비전문가를 불문하고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우려 함에서다. 2001년 8월초에 처음으로 장대한 타이가인 동·서 사얀(鮮: Sayan)산맥 중의 투바에 가서 투바대학교 사학과의 스키타이사 전공자 헤르테크 여교수를 만났더니 놀랍게도 스키타이(Scythia)도 사하(Saxa)도 소욘(鮮: Soyon)도 모두 젖을 주는 암순록 수간(Sugan)에서 나온 이름이란다.
  모음과 모음사이의 'g'가 탈락되는 북방몽골로이드 언어의 관행에 따라 선(鮮: Son)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흑해일대에서 우랄-알타이 지역으로 올라왔다는 사실은 원주민들에게는 상식이기도 하다.
  이 나이가 되도록 유목사를 공부해옵네 하던 필자의 무지가 너무나 부끄럽고 놀라울 따름이다. 문제는 그 선이 순록목초지(Ewen: 鮮)이고 선은 바로 몽골과 한국의 선조인 고조선(古‘朝鮮’)·선비(鮮卑)의 그 선(鮮;Sugan)이라는 점이다. 몽골족의 기원지 훌룬부이르 몽골스텝에서는 아직도 Korean을 선어(鮮語)로 말하고 선문(鮮文)을 쓰는 선족(鮮族)이라고 한다. 그 몽골본향엔 조선(朝鮮)도 한(韓)도 없다. 몽·한이 모두 선족(鮮族)-‘순록치기’의 후예인 동족 ‘선’겨레라는 것이다. 필자는 일찍이 이렇게 설파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5,000년 전부터 15,000년간 몽골고원은 빙하기로 동토(Tundra)지대여서 이곳에서 사람을 먹여 살릴 식량자원은 순록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순록시대’라 할 장대한 생태 생업사 배경이 있었음을 각별히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후 氷河가 北流하면서 내몽골 遼河지역 夏家店 하층 청동기문화(BC2000~1500)가 잔류해 Minusinsk분지 당해 청동기 유적과 함께 다소간에 대비되는 것은 몽골과 자바아칼지역의 朱錫(Tin)을 받아들여 구리의 靑銅化를 이루는 것과 관련하여 이어지는 이른 철기화 진입과 함께 주목되고 있다. 분지를 타고 드는 이런 혁명적 발전은 서북유라시아의 스키타이 혁명 선두 주자화를 가능케했기 때문이다. Tuva나 Turk와 흑해 우크라이나지대가 동북아시아 유목기원지 훌룬부이르지역보다 2~3백년이나 빨리 스키타이혁명을 이루는 유목사적 배경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순록시대의 토대 위에 그 후 ‘순록유목의 창세기’가 중동부 시베리아 북극해권에서 쓰였음을 전제로 하고서야 동북아시아 유목제국의 시원사적 거대토대를 복원할 수 있게 마련이다.
  이런 거대하고 장구한 한랭 고원 저습지대 순록유목태반사를 거세시킨 「몽골국사」의 비극은, 칭기스칸 몽골세계제국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사안(史眼)으로 들여다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한랭 고원 건조지대 스텝 기마(騎馬) 양(羊)유목 기원의 칭기스칸 ‘몽골 기마양유목제국사’가 특히 몽골 사회주의체제 와해 이후부터 지나치게 압도적으로 부각되면서 그 위대하고 장엄한 뿌리인 북방 몽골로이드의 ‘순록유목제국사’가 「몽골국사」에서 아예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몽골국사 복원사상의 가장 치명적인 비극이라고 하겠다.
  이런 역사적인 전개과정에서 동북아시아 유목제국의 태반으로 훌룬부이르 몽골스텝을 공유하고 있는 이상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많든 적든 이러저러한 계승관계를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몽골족이 직접적으로 기마 양유목을 배운 것은 돌궐 지배하나 또는 영향권 안에 들어서이니, 돌궐의 서진과정에서 독립운동을 통해서건 그 유산을 물려받아서건 위구르한(回鶻汗)국이 멸망한 840년 이후의 일이다.
  그로부터 훌룬부이르 몽골 수림툰드라지대에서 본격적으로 몽골스텝으로 진입하면서 양유목을 배웠고 양유목을 발전시키면서 비로소 말을 타고 양을 몰고 활을 쏘게 돼 기마사술(騎馬射術)이라는, 당말·오대·송초 변혁기 이래의 최첨단 제철기술과 결합된 유목무력을 갖추게 돼서 뒷날 몽골 유목세계제국을 창업할 토대를 마련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혼|Xонь(羊) 이라는 몽골어가 실은 돌궐어임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이는, 돌궐과의 접촉이 있기 이전의 핵심 순수몽골인인 'Nirun Mogol'인은 양을 몰랐거나 양치기(牧羊)가 적어도 주된 목축업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양치기의 보조수단으로 발달한 기마사술이라는 최첨단 유목무력도 보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1995년 7월 2일 울란바타르 호텔 로비에서 한껏 들뜬 억양으로 “주교수, 내가 뭔가 보여줄 거야!”라고 외친 이가 있었다. 유언이 될 이 말을 남긴 이는, 1950년대 중반에 씨마늘을 걸머지고 충남 서산에서 한국학을 연구하겠다며 무작정 상경했던 촌티나게 검게 탄 당시의 시골소년 한국무가(巫歌)연구자 김태곤 교수였다. 1996년 1월 25일에 나는 서울의대 병원 영안실에서 김선배를 마지막 보게 됐다. 영하 4~50도를 오르내리는 사하를 한겨울에 적응과정도 없이 예순을 코앞에 둔 나이로 네 번이나 넘나들다가 입원중에 기도(氣道) 협착으로 돌연사한 터였다.
  필자와는, 김선배가 당시에 찬반론의 극과 극을 오가던 이 풋내기 연구자의 처용가의「처용(處容)은 거북이」(왕팔단|王八蛋: 뱀에게 마누라 뺏긴 웅구|雄龜놈; 현무신주|玄武神主)라는 논문을 과감히 『한국민속학』(6, 한국민속학회 1973)에 처음 게재케 해준 심정의 인연이 있다.
  너무 추워서 사하엔 개구리(Мэлхий)는 살고 거북이(Яст Мэлхий)는 못살지만, 아둔하고 게으른 필자는 두 번째 현지탐사를 하고 이제야 김태곤 선배가 왜 사하-순록유목 기원지 선(鮮)에 그토록 한사코 몰입했었는지를, 북방몽골로이드의 유목본질은 농경정착문화와는 달리 이끼(蘚)나 양초(羊草)와 같은 ‘유목목초’를 따라 끈질기게 시공을 옮겨 다니면서만 읽어낼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새삼 깨우치고 있다.

― 머리말 <스키타이 사하 ‘선(鮮)’ 탐사기>


                  - 차    례 -    

머리말 | 스키타이 사하 ‘선(鮮)’ 탐사기 
국문초록 | 몽골의 홍길동 洪茶丘 拔都 
국문 주제어 

1. 마중말 : 몽골밥상의 김치-몽골스텝의 그 시절 유목목동 
2. 고려계 몽골국모 奇Öljei Qutug  황태후 「‘北元’ 몽골」 和寧과  동북고려 和寧 
3. 耽羅國 항파두리성의 ‘洪拔都’家譜 
4. 몽골초원의『홍길동전』과 『임꺽정전』 붐 
5. 몽골게르 북벽의 거북조상신주와 통구사신총 ‘玄武’, 탐라국 洪제독의 高麗龜船 創製造船 지휘 
6. 「북원」고려계 몽골국모 奇Öljei Qutug 황태후의 ‘和寧’ 지향과 朝·鮮族 합작 고려 거북선 出帆 



[2023.03.10 발행. 278쪽. 정가 5천원(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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