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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인생] 김금용 詩 <문지방>

등록날짜 [ 2018년10월19일 22시35분 ]


문지방 / 김금용

 

 

문을 열어야 그에게 갈 수 있다
문을 열어야 그에게 말 걸 수 있다
문은 등 뒤에서 강물로 넘치다가도
문은 번번이 등 뒤에서 수갑을 채운다
문 앞에 선다
문고릴 잡고 선 시간 속으로
공기 벽이 견고하게 잠기는 걸 듣는다
침묵이 터져나갈 곳을 찾지 못해
제 홀로 채워지는 걸 듣는다
문지방 하나 건너가면 될걸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불면증에 시달려 보지 못한 문이 낄낄거린다
꽃 피기를 기다려 보지 못한 문이 혀를 찬다 

 

● 김금용

동국대 국문과와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원 졸업.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 『광화문 쟈콥』 『넘치는 그늘』 『핏줄을 따스하다, 아프다』, 번역서(시집) 『문혁이 낳은 중국 현대시』 『나의 시에게』 등이 있으며, 펜번역문학상, 동국문학상 등을 수상.


■ 해설 및 감상  
  사유로 경계를 허물어뜨린 시 좀 봐. 문지방을 나비처럼 날아 문을 없애 버렸잖아? 너와 나 사이를 와장창 깨부수고 노래를 부르고 있어. 민족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십 년을 결별했다고. 형제가 문지방 하나 넘지 못해 모르는 채 살아간다고. 관계에 번번이 족쇄를 채우는 문을 조롱하잖아? 먼저 손 내밀면 되는 것을 이것저것 따지다가 늙어버렸다. 먼저 다가가면 되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버리지 못했다. 문이 웃는다. 밀면 밀리는데 열지 못한다고 낄낄거린다. 문고릴 잡고 딱딱하게 서 있는 내가 우습다고. 터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제 홀로 채워진 당신이 불쌍하다고. 문 하나 다스리지 못해 망가진 것들이여, 문이 혀를 차게 하는 저 발칙한 시 좀 봐.  / 김은자


● 김은자 시인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와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당선. 재외동포문학상(시) 대상, 미주동포문학상, 윤동주문학상(해외동포), 해외풀꽃시인상 수상. 한국문학방송 편집위원. 저서로 시집 『외발노루의 춤』 『붉은 작업실』, 산문집 『슬픔은 발끝부터 물들어 온다』 『비대칭으로 말하기』, 시선집 『청춘, 그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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