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 된 가야 고분군은 한반도 남부지역에 1세기부터 6세기까지 존속했던 가야의 성립과 발전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증거다. 또한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병존하면서도 연맹 또는 연합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했으며 대륙과 해양,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를 바탕으로 사회발전을 촉진 시키는 다양한 기술의 교류를 고고학적으로 증명해주는 유산으로 인류 역사에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 2012년부터 10년간 세계유산 등재 추진
- 최초 3개 고분에서 7개로 확대하여 완전성 보완
- 2023년 9월 17일 세계유산 등재
가야 고분군은 2012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2013년 12월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고령 지산동 3개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데 이어 2015년 3월에는 문화재청 세계유산 우선등재 추진대상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2017년 가야사 유적으로서 완전성을 뒷받침할 유산이 추가 필요해 심의 보류되어 2018년 등재 대상을 7개 고분군으로 확대했다. 2019년 3월 조건부로 등재 신청 후보 선정 심의를 통과했으며, 전문가 초청 워크숍 등의 보완작업을 통해 2020년 9월 최종 등재 신청 대상으로 확정됐다.
2021년 1월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가 세계유산센터에 제출됐고, 3월에 완전성 검토(서류 양식 심사)가 통과됐다. 2021년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장실사 및 패널 회의를 걸쳐 2023년 5월 세계유산 자문기구로부터 등재 권고가 결정됐다. 그리고 2023년 9월 17일 가야 고분군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 옥전 고분군, 합천댐 수몰지역 주변 지표조사 시 발견
- 화려한 금속공예기법을 보여주는 유물과 국제교류 증거인 로만글라스 출토
- 6점의 말머리가리개 출토 등 임나일본부설 극복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옥전 고분군은 황강가의 해발 50~80m에 달하는 야산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유구는 몇 개의 능선에 나눠져서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무덤 대부분은 봉분이 남아 있지 않아서 겉으로 볼 때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특이하게 언덕의 한쪽 지역에는 지름 20~30m 내외의 높은 봉분을 가진 무덤이 27기가 모여 있으며 전체 고분의 숫자는 약 1,000여 기로 추정하고 있다.
유적은 1985년 여름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황강 주변의 정밀지표조사과정에서 많은 양의 토기, 갑옷과 투구, 금동제 유물 조각이 채집되면서 그 중요성을 확인하게 됐고, 그해 겨울에 1차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1987년 겨울, 1989년 봄에 걸쳐 3차의 발굴조사가 진행됐으며 1991년 여름부터 1992년 봄에 걸쳐 4, 5차 발굴조사가 이뤄져 이 고분유적이 4세기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이 유적은 약 200년 가까이 이 지역에서 살았던 가야 사람들이 남긴 흔적임을 알 수 있다.
옥전 고분군은 언덕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묘역을 넓혀가면서 축조되었는데, 무덤 형태는 일반적인 덧널무덤과 덧널의 바깥쪽에 돌로 보강한 이 지역의 독특한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 다양하다.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가야고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분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자료이다. 이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옥전 고분군의 발굴조사 성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화려한 장신구로는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가락지 등이 출토됐다. 귀걸이는 40쌍이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 조사된 어느 가야 고분보다도 많은 수량일 뿐만 아니라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세공 기술은 당대의 백제나 신라의 귀걸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또한 쿠마모토현 에다후나야마고분군, 덴사야마고분 등에서는 합천 옥전 고분군의 것과 유사한 금귀걸이가 출토되어 두 지역의 교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옥전 28호분에서 출토 금귀걸이는 가야 귀걸이를 대표하는 유물로 일본 금속 공예에 영향을 준 점을 인정받아 2019년 12월 보물 제2043호로 지정됐다.
목걸이는 옥전(玉田, 구슬밭)이라는 유적의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구슬로 만들어졌다. 특히 M2호 분에서는 한꺼번에 2,000여 개가 넘는 구슬이 발견되기도 했다. 가야 고분에서는 처음으로 28호분에서는 이러한 구슬을 다듬는 데 사용되었던 사암제의 옥을 갈던 숫돌이 발견되어 이 지역에서 직접 구슬을 제작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신분을 상징하는 유물도 많이 출토됐다. 23호분에서는 맨 윗부분에 금동봉이 있어 국내에는 그 예가 없는 희귀한 자료로 평가되는 금동관모(金銅冠帽)가 출토되었고, 용이나 봉황문양으로 장식한 고리자루큰칼은 35호분과 M3, M4, M6호분에서 출토됐다. 이러한 유형의 고리자루큰칼은 장식의 화려함과 독특함 때문에 주목을 받아온 자료인데, 학술 발굴조사에서 이처럼 많이 발견된 경우는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처음 있는 사례였다. 특히 M3호 분에서는 용봉문양 2점, 봉황문양 1점, 용문장식 1점 등 장식 고리자루큰칼 4자루가 함께 부장된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고 지배자급 무덤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이를 인정받아 2019년 12월 보물 제2042호로 지정됐다.
옥전 고분군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철제품들이 출토됐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는 무기와 갑옷, 말갖춤들이다. 특히 말머리가리개는 부산 동래 복천동 10호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래 여러 고분에서 출토되었는데, 옥전 고분군에서는 이 말머리가리개가 무려 6점이나 출토됐다. 일본의 경우 오타니고분과 쇼군야마고분, 후나바루 고분군의 출토품 3점 정도가 전부인데, 이처럼 단일고분군에서 6점이나 발견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 유적의 중요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말머리가리개는 일본의 것보다 시기적으로 빠르고 수량도 휠씬 많아 당시 우위의 무장력을 갖춘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에서도 그 근거를 잃게 됐다.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여러 지역과 연계된 유물들도 있다. M3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장식 투구는 고구려 계통의 유물이며, 용봉문양 고리자루 큰칼과 말 안장틀의 거북등무늬는 백제 또는 중국의 남조(南朝)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또 M1호 분에서 출토된 유리잔과 편원 어미형말띠드리개[扁圓魚尾形杏葉], 금동제허리띠, 창녕식토기, M6호 분에서 출토된 출자형(出字形) 금동관은 창녕, 신라와의 교류를 통해 얻어진 산물이다. 또 M11호분에서 출토된 금제귀걸이와 나무널에 붙이는 연화문장식, 널못 등도 백제 계통의 유물이다.
한편 옥전 고분군에서는 가야 고분에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의 로만글라스가 발견됐다. 이 유리그릇은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유물로서 실크로드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하였으며, 동서 문물 교역의 중심에 있던 신라가 이것을 받아들여 가야지역에 전했다고 본다. 5세기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옥전 고분군 축조 세력의 대외교섭 능력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것이다.
- ‘다라’ 명칭 한중일 역사서에 공통적으로 사용
‘다라’라는 명칭은 현재 옥전 고분군 동쪽에 위치한 ‘쌍책면 다라리’라는 지명으로도 전해지고 있으며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는 나라 이름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외교문서인 양직공도(6세기)와 일본서기(8세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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